우리는 아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이야기해 보자. 지평이라는 이름 아래 세 지평을 공유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연구공동체’를 표방하는 우리를 보며, 혹자는 우리가 이어지는 담론의 공박을 치열하게 펴 갈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와 비슷한 이들이 만든 정기간행물이나, 비슷한 이들이 만들었던 ‘글쓰기 모임’을 떠올리며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 공동체가 운영되리라고 예상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연구공동체 지평’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가 하려는 작업은 기성 학술지의 방식으로 논증과 토론을 이어가자는 것이 아니며, 그럴 듯한 주제 아래 글을 빼곡히 써

말더듬이의 땅

우스갯소리로 시작해야겠다. “셋이라는 건, 결국 모두가 혼자라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 같아. … 셋이 되어 나머지 둘이 이미 잠들어 있는 걸 보면서 정말로, 정말로 혼자라는 걸 깨달아야 사람은 완전해져.” —윤이형, “셋을 위한 왈츠” 둘에게 선수를 뺏겨 외롭다는 이야기다. ‘여정’의 글 하나로 충분한 시작이라 생각했는데 ‘단현’이 균형을 깨버렸다. 길고 멋진 말이 다 나와버려 걱정이다. 지적 허영을 먹고 사는 사람 중 하나라 이런 모양새는 좀 아프다.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인 탓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에 관한 이야기다. 어릴 적의 나는 단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숨을 쉬고 많은 다짐을 해야 했다. 말을 한다는 건 내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사람이

텍스트, 짜깁기, 혹은 다른 방식의 글쓰기

무엇이 글을 쓰게 하는 것일까?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내쳐도 글쓰기만은 버릴 수 없다면, 결국 다시 쓴다는 것으로 돌아온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충동/강제하는 것일까? 글쓰기는 무엇을 향해 있을까? 아니, 애초에 쓴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하나의 완결된 문학작품, “순수한 문학”, “완성도 높은, 잘 짜여진 소설”이라는 찬사가 우리의 시대에서 과연 소용있는 것일까?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글쓰기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아주 오랜만에 다시 시작할 마음을 먹었다. 지금, 여기에서, 다시 글쓰기를 가동하기. 그 다짐을 하면서 글쓰기가 처음으로

우리는 글을 쓰자고 했다

어떤 것을 진지하게 고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아직 이룬 것도 하나 없는 이들에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확신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찰들로 다시 돌아온다. 왜 나는 이것들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저 내가 그것들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 ‘왜’의 질문이 크게 의미가 없다. 그저 나는 어떤 것을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어려운 행위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배움의 초입에 있다. 어떤 것을 쓰기 위해서는 그것에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