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an on a boat holding gas lantern

진리란 단지 우리 안에 있는가?

이 배는 단지 허상인가? 또는 이 배는 단지 역사적인 어떤 것만을 제공하는가? 즉, 우리가 진리를 판별하는 이 체계는 허상에 불과하며, 상대적이고 역사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틀에 불과한가? 이는 그런데 ‘인식적 규범성’이라는 생각에 비추어볼 때 상당히 괴상하다. 어차피 우리가 그 자체로 참인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이 배를 뭐하러 타고 있으며 그 배를 수리할 이유는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뭔가 하나의 배가 다른 배보다 더 탐구를 위해 쓸모있기에 이 배를 타고, 또 이 배보다 더 쓸모있는 배를 알게 되면 그 배를 타는 것 아닌가?

참과 앎 사이에 있는 것

참과 앎의 분리로부터 출발해 퍼트남, 데이빗슨의 행적을 따라오며 우리는 소통 없는 개인들, 그리고 의식과 세계의 분리를 전제한 채 진리나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 무용하다는 철학적 교훈을 발견한다. 그런 무용한 전제들을 버린 뒤 나오는 상식적 세계관에서 철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두 명의 철학자가 보여주었던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비평적 진보, 또는 비평적 진리

비평에는 진보와 진리가 모두 실재하며, 우리는 진보나 진리를 현대적 방식으로 재이해함에 따라 어떤 비평을 다른 비평보다 진보되었다고 평가할 기반을 얻는다. 한편 우리는 실천적 이유에서 어떤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신화적 상상력인데, 그것의 어떤 특성은 기묘한 인식론적 문제를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