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과 후회, 그리고 희망

왜 이른바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가? 그의 탄생 자체가 우리의 현재적 행복을 확언하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그의 가르침이 위대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오히려 그가 이루었다는 위대함이 지금 우리의 곁에는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탄생이 열어준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과 그리움 속에서 그의 탄생을 기념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탄생이 정말로 일어났었음을 믿으며, 그가 열어준 기회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리고 다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결단 속에서 그의 탄생을 기념한다.

약한 사람들이 모여, 근근히

시장통에서 밤을 지새우는 천하고, 서로 약한 사람들. 그들 가운데에도 천사가 온다. 그들에게 내려진 소식을 통해 저들은 메시아를 찾으러 갈 것이다. 고된 중에도 도래할 평화가 있으리라고 믿고, 그렇게 말하는 이웃을 신뢰할 것이다. 신뢰 속에서 약한 이들은 차츰 연대할 것이다.

어두운 현실에서 낙관한다는 것

마리아를 생각합니다. 그의 “수태고지”, 즉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예수의 잉태를 고지받은 사건에서 우리는 어떤 마리아를 상상할 수 있을까요. 복음서의 증언으로부터 흔히 상상되는 마리아는 예수의 잉태로 인해 크게 기뻐하는 여인입니다. 또 교회의 전승과 후대에 <수태고지>라는 제목으로 그려진 예술작품들은 그 여인을 지적이며 활기 넘치고, 반가운 마음으로 가브리엘의 영보榮報를 받은 이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빈치의 그림은 이런 상상력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수태고지>에서 마리아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석조 건물 앞에서 우아하게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성으로 묘사된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평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