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드라마 시대의 연극 : 배우 중심의 다큐멘터리 연극 제언

직접성과 현장성을 소유한 것, 그리고 직접성과 현장성이 소유한 것은 배우의 몸이다. 재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배우 자신의 이야기를 배우의 몸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이야기하기 서사는 배우로 하여금 오브제와 설치물 등으로 물체성이 강조된 그들의 몸을 통해, 그리고 포스트드라마 시대의 희곡에 나타나는 해체된 언어의 발화행위보다 더욱 독립되고 확장된 창작주체로서 기능하게 한다.

규범성 없는 당위성의 가능성

말하자면 우리는 당위성을 다시 사유함으로써, 당위성에서 규범성을 걷어 내어 ‘규범성 없는 당위성’을 발명함으로써 행위의 가능성이 열려 있으면서도 폭력을 배제할 근거를 확보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규범성이라는 가장 오래된 습속ethos으로부터 사유가 자유로워짐으로써(그것을 다만 실용적인 규칙과 습관으로만 유지함으로써) 정치성은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함정 맞다

만약 내가 이 헛짓거리를 계속한다면, 다음 물음은 아마, 이 답도 없이 구성주의적이고 수정주의적으로 보이는 체계를 한순간만이라도 그럴듯하게 고정시킬 수 있을까, 비슷한 물음이 될 것이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게 돼야 내 비평의 틀이 생길 거 같은데, 만약 정말로 끝까지 헛짓거리라면, 빨리 다른 우회로를 발견하거나, 이 작업이 애초에 필요 없는 일이라는 확신을 찾았으면 좋겠다.

합리적 인간

나는 차라리 메타이론적 층위에서, 합리적 선택에 관한 탐구들이 미래 선택에 대해 갖는 규범성을 부정해 버리는 것은 어떤지 제안한다. 즉, 경제학은 경제 행위에 쓸모 없다. 윤리학은 윤리적 삶에 쓸모 없다. 문법학은 올바른 언어 사용에 쓸모 없다. 미학은 아름다움의 추구에 쓸모 없다. 다만 이러한 탐구 활동은 우리가 어떤 규범을 갖고 있는지를 살피는 이정표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합리성 탐구 활동에 대한 기대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다.

무슨 마음인지 알 수 없는 마음

정말 잘 모르겠다. 시간을 사이에 두고 나란한 이야기들을 어떤 관계로 받아들여야 할지. 엉망진창으로나마 당시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갔던 것 혹은 과거의 기억을 진심으로 마주하는 것이 뭐라도 나아지게 할 거라는 희망이 될 수 있을지. 그런 위안이란 무력한 게 아닐지. 어쩌다 고발자가 된, 과거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어떻게 보아도 불타는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건 아닌 듯한 한 사람이, “무슨 마음인지 알 수 없”(227쪽)다며 돌길을 걷는 마음에 대해서나 조금 알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다.

Pathos in Faces

— John Cassavetes. (1968). 〈Faces〉.
감독 존 카사베츠John Cassavetes는 어떻게 클로즈업이 영화를 예술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배우의) 얼굴들과 결합하여 어떤 힘을 내는지를, 그리고 사건 중심의 영화, 논리정연한 영화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밝혀낸다. 영화는 더욱 현실적이어야 하고, 더욱 인간적이어야 한다.

계시

토대주의자들의 딜레마란 늘상 이런 식이다. 토대가 있다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거나 자기정당화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자기정당화하는 토대는 우리에게 큰 지식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을 텐데, 정당화될 수 없는 토대를 신뢰한다는 것은 오로지 규약 또는 결단의 문제인 것 같다.

드러난 취약함, 생존의 강조: 유동화된 상상의 가능성

이 글은 이번 사태에, 우리에게 새로운 일상을 가져다 줄 도약의 여지가 있다는 걸 얘기하려 한다. 숫자로 호명해서는 안 되는 지점을, 재난을 맞이한 상황에서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지평을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역사의 분기점은 현 상황이 영구히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데에 대한 강력한 자각이 집단적 경험으로 이루어질 때 만들어진다. 현재 상황 중에서 우선시하는 것들이, 논의되는 것들이 이 다음 살아남은 자들이 살 세상을 구성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선진국 되기

담론 하의 개인은 새롭게 빚어진다. ‘경제적 성장을 이룩해 선진국 되기’는 마치 노래방의 우선 예약 시스템처럼 개인의 우선순위 앞자리를 차지한다. 경제적 성장은 국가적 목표를 넘어 개인의 목표가 되었으며, 우선순위를 내면화한 개인은 경제 성장을 목표로 하는 개인으로 작동한다. ‘빈곤하고, 나약하고, 게으른’ 한국. 단현의 말을 빌리자면 비상사태가 선포한 ‘조국 근대화’의 사명은 ‘예외상태의 일상화’이자, 체제를 옹호하는 경제발전과 연관없는 모든 가치의 항구적 유예 사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