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웰과 브랜덤의 개인주의 논쟁

맥도웰과 브랜덤은 경험주의 논제에서 경험적 지식의 획득을 성공적으로 설명하려는, 동일한 목표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두 철학자가 각자의 인식론을 전개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 차이는 관찰 보고observational report를 정당화하는 우선적인 권리가 언어 공동체에 있느냐, 혹은 주체 개인에게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는 단순히 개념의 명료화와 같은 기본적인 작업으로는 판가름날 수 없는 근본적인 철학적 견해의 차이다.

선험적 종합판단은 가능한가

본고는 칸트가 〈비판〉에서 다루는 ‘선험적 종합 판단’의 정의와 그 가능성을 간략하게 조명하고, 칸트가 선험적 종합 판단의 기치 하에 내세우는 수학과 철학의 이미지가 어떤 한계를 지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필자가 보기에 칸트로부터 전체론적 (혹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콰인적인) 경험론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철학적 유행이 아니라, 칸트적 경험론이 지니는 명확한 한계들로부터 따라 나온 필연적인 이행에 다름 아니다.

“세계에 대한about world” 기술 은 어떻게 가능한가?

감각은 세계와 우리의 유일한 접점이다. 이는 칸트가 비판 철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 바 그대로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와 만나기 위해서는, 감각 경험이 우리와 세계를 이어주는 개념적 심급이어야 한다. 그러나 칸트는 그가 철학적 정언으로 채택한 초월적 방법론의 한계 때문에 감각 소여를 확실히 개념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따라서 맥도웰은 감각을 개념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선험성을 재정립하는 것이 Mind and World의 작업이며, 이를통해 『순수이성비판』에서 의도된 비판 철학의 이상 또한 달성될 것이라고 자부한다.

Impossibility of philosophy and postulates of post-modern philosophy

⎯ Looking through the controversy between Derrida and Foucault on Descartes’ First meditation ⎯ ⎯ “포스트모던 이후의 철학” (1)   Is the philosophy still possible in post-modern time? It’s worth mentioning that this weird question became main problem of philosophy. After Kant declared all metaphysical attempts to be dogmas, or since Heidegger made the end of philosophy the main theme of his philosophy, the question has followed thinkers. This paper aims to deal with this

철학적 해석학과 존재론의 기여

텍스트는 어떤 관점에서 해석되든 그 자체로 자신을 드러낸다. 진리는 내용이 아니라 텍스트와 관점들 간의 관계를 정식화하는 구조와 관점들의 연속적인 이행에 있다. 탁월한 해석은 탁월한 내용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층위들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모아주는 탁월한 종합에 다름아니다.

본질에 관하여

본질에 관한 물음의 초입에서 우리는 “그것을 그것이게끔 하는 바로 그것”이라는 소박한 정의를 토대로 담론을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본질은 ‘본질적 속성’으로 이해된다. […] 그러나 현대 철학의 문제제기는 본질을 그러한 속성들의 관계보다 훨씬 먼 곳까지 데려간다. 우리가 의자를 인식할 때, 상기한 의자의 자연적 속성들은 해석의 대상일 뿐이다. 여기서는 각 해석자가 의자를 대하는 해석 방식, 즉 “현존재 각자의 세계”가 우선한다. […] 따라서 하이데거의 본질 이해를 전수받은 현대 철학의 흐름에서는 이른바 ‘본질적 속성’ 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멈춰라, 실천하라

-해체 철학의 시대 이후에도 변치 않는 자유와 학문의 본질을 소묘하며- 모든 ‘위대한’ 입장들이, 행동을 정초하는 이념과 그 이념을 발판삼아 도약하는 실천 간의 역동적 관계로 대별될 수 있다는 주장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그것은 변치 않는 자유와 학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혹시 (1)어떤 입장이 거대한 이념의 구축에만 전념하거나 거꾸로 (2)이념에 종속되지 않는 즉각적인 행동이나 실재에 경도되었을 때조차도, 그것은 다시금 이념과 실천의 탁월한 연합을 제시하는 후대의 이론에 흡수-변형됨으로써 ‘위대한’ 입장에 봉사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는 수많은 입장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