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성 없는 당위성의 가능성

말하자면 우리는 당위성을 다시 사유함으로써, 당위성에서 규범성을 걷어 내어 ‘규범성 없는 당위성’을 발명함으로써 행위의 가능성이 열려 있으면서도 폭력을 배제할 근거를 확보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규범성이라는 가장 오래된 습속ethos으로부터 사유가 자유로워짐으로써(그것을 다만 실용적인 규칙과 습관으로만 유지함으로써) 정치성은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

상대주의의 폭력 혹은 단일한 실재에 대한 긍정

이러한 국면에서 방관 혹은 기계적인 중립은 사실상의 상대주의다. 그리고, 절대적인 옳고 그름을 확정할 수 없다는 상대주의는 단지 합당하지 않은 인식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윤리의 차원에서 관용이 아닌 폭력이다. 일어났던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는 우리의 세계에, 오직 하나인 실재에 새겨져 있으며 따라서 결코 부정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예외상태의 일상화 / 일상의 예외상태화’의 계보학

일상이 비상이 된 삶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 말하고, 그 말은 비상이 된 일상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계속해서 삶이란 것이 살아진다/사라진다. 우리가 비상화, 예외상태화해버린 일상의 어떤 영역들을 재건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재난의 시기에서 예외상태가 일상화된 나머지 결국 예외성이 잘게 흩어져 잔존한 채 공동의 무의식에 흡수되어 망각되어버리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 2020년의 봄에, 내가 기도하는 것은 다만 이런 것들이다.

삶에 관해서 묻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심코 (우리를 살게 하는) ‘구조’에 연루된다는, 그래서 그 누구도 마냥 ‘결백’하지는 않다는 감각. 그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삶에 관해서 되묻는 일이 어떻게 윤리 혹은 정치에 관해 말하는 일일 수 있는지, 혹은 (결국 같은 말이지만) 윤리 혹은 정치에 관해 말하는 일이 어떻게 삶에 관해서 되묻는 일일 수 있는지에 관해 쓰려 합니다.

체계의 확장 — 상상될 수 있는 것들 간의 차이

그저 아무렇게나 상상한 것 — 표기의 형식을 이용해서 명제를 만들거나 하는 식의 것 — 과, 지금 이 세계의 확장이며 지금 이 세계와 유리되지 않는 것으로서 상상된 것. 이 둘에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론적 위치를 부여해야 하는 게 아닐까. 도저히 가능하지 않을 것만 같은 것, 얼토당토않아 보이는 것을 말하는 방식들은 윤리 혹은 정치의 차원에서도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

식민과 난민 사이 — 포섭과 배제의 운동을 통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억압과 통치

산업화된 이주결혼은 자본의 움직임을 통해 여성을 움직이고, 이들을 성적 대상이자 노동력으로 개발한다. 그리고 민족국가의 작동은 결혼이주여성을 권리 행사의 주체의 자격에서, 독자적으로 체류하고 거주할 수 있는 지위에서 배제한다. 이와 같이 국가 내부에 국가 없음을 만드는 (준)난민화는 이들의 위치를 더욱 취약하게 하고, 이들이 가부장적 가족 제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작동되는 자아를 넘어서 타자와의 관계의 정치로

자아를, 나의 행위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은 윤리적인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오늘-여기를 특징짓는 문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윤리적인 것은 이미 정치적인 것과 맞물려 있다는 것이며, 윤리적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옳음을 실천하는 일은 이미 정치함을 향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윤리가 정치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윤리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생존을 넘어서 살아있기, 애도하기/기억하기

그러므로 생존 개념이 제기하는, 살아있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에 관한 물음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타자들의 죽음 이후에, 여전히 남아있고 작동하는 폭력들의 와중에 ‘나’는 어찌어찌하여 살아남았다는 것이 과연 살아있다는 것인가? 혹은, 이렇게 연명한다는 것, 숨이 붙어 있기만을 지속한다는 것, 살아있음의 상태를 연장하는 것, 조금 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과연 살아있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