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걷는 자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아만자』와 서사의 치료

장례식 후 당신의 서랍에서 가져온 체크무늬 손수건을 오랜만에 꺼냈다. 이제 이 손수건에 당신의 살냄새는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나는 당신의 냄새를 기억한다. 아카시아 껌과 도마도 건너 당신의 미소도 기억한다. 당신이 외롭지 않도록 당신과 더 많은 대화를 할걸. 당신은 내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은 누군가와 계속해서 나눌 것이라고 미리 말할걸. 하지만 할아버지, 당신이 그걸 지금은 알 수 없을 테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나의 숲에 있단 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며 기억할 것이다. 당신과 내가 접힌 기억들을 치료할 것이다.

분위기와 껍데기의 오프비트적 정동에 대하여

따라서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은 우리에게 어떤 분위기 속을, 혹은 어떤 껍데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제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그 사이에서 나의 “쪼”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역동적인 나의 껍데기이자 분위기이며, 정동의 시발점임을 제시한다. 애초에 마술이란 마술사가 아니라 관객 된 내가 카드를 뽑아야 시작하는 것이고, 카드를 뒤집어야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하나의 분리된 정동은 없겠지만, 동시에 내가 주변의 정동적 힘에 영향만 받는다고 상심해서도 안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