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진지하게 고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아직 이룬 것도 하나 없는 이들에게, 자신이 생각한 바를 확신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찰들로 다시 돌아온다. 왜 나는 이것들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그저 내가 그것들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한 ‘왜’의 질문이 크게 의미가 없다. 그저 나는 어떤 것을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어려운 행위에 있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나는 배움의 초입에 있다. 어떤 것을 쓰기 위해서는 그것에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고, 또 쓸모 있는 것을 쓰기 위해서는 구태한 주제를 새로운 것인 양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배운 것이 적은 나로서는 이런 점을 만족시키는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어떤 것을 생각함에 따라 나는 그것을 말하고, 쓰게끔 방향지어진다. 그저 나는 어떤 것을 쓰고 말한다.

이 공간은 세 명의(그리고 더 늘어날지도 모를 수의) 저자를 통해 만들어진다. 각자의 스타일은 사뭇 다르다. 어떤 것을 고찰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확실한 수렴점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그 사실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단지 생각하고 쓰고 있다. 우리의 차이는 그 과정에서 드러날 뿐 아니라, 드러나야만 한다. 쓸모있는 것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내게 있지 않은 것들과 마주칠 필요가 있다.

〈지평L’horizon〉이라는 이름에 부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 본다. 지평이라는 것은, 우리 세계의 한계를 결정하면서 동시에 그 세계 바깥의 것들에 대한 열린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의 위치에 의해 내 지평이 결정되면서 나는 어떤 공간에 갇히지만, 그 지평이 있기 때문에 나의 밖에 어떤 공간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면에서,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에 따라 지평은 옮겨진다. 지평의 이동! 그것은 이 공동체에서 분명히 희망할 수 있는 몇 중 하나이다. 나의 지평이 넓혀질 수 있을까? 나는 정말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갈 수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나는 나의 지평이 옮겨지는 것을 분명히 안다.

우리는 글을 쓰자고 했다.  어떤 ‘한계들’을 제시할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한계들이 옮겨질지에 대해서도 정해놓은 것은 없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말하는 것을 말한다. 또 누군가가 말한 것에 답한다. 거인의 어깨 위가 얼마나 높은지는 알 수 없으나, 세 사람의 視界를 이어볼 때 어떤 높은 곳에서 본 것보다도 넓은 땅을 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있다.

2018년 3월 24일.

여정
benedict74@yonsei.ac.kr
지평 기획 총괄. “일상적인 것의 재발견” 기획자. 형이상학, 언어철학, 미학,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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