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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진리 사이 (2)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인문학부의 ‘한눈팔지 않는 학생’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대략 다음과 같은 순서를 갖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런 것 같다. 먼저 ‘진리’에 대한 커다란 기대를 갖고 대학에 들어온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조금은 알지만, 그렇게 잘 알고 있지는 않다. 여하간 진리란 주어진 것이고, 외부 세계가 진리를 결정한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진리 탐구의 자리가 학문의 장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신념은 1년차 즈음까지 이른바 ‘모더니즘적’, ‘낭만주의적’, ‘자유주의적’ 입장들을 만나면서 유지된다.

그러다 조금 이른 학생은 1년차 중반, 늦게는 2년차 즈음 되어서(학교 생활 3년차인데도 아직이라면 그 학생은 한눈판 학생이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입장들을 접하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아직 애매한 단계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사상사적으로 중요한 이들을 통해 포스트모던의 ‘입구’에 들어선다. 단일한 합리성의 절대적 권위는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여하간 모종의 모더니즘 인식론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듯한 독서 목록이 이들에게 주어진다. 이들은 쿤과 푸코를 읽고, 니체와 후기 비트겐슈타인을 읽는다.

그리고 남은 몇 년을 학교에서 보내며 ‘한눈팔지 않은 학생’들은 크게 둘로 나뉘는 것 같다. 일군의 학생들은 이 ‘입구’에 들어가기를 망설이거나, 잠깐 들어간 뒤 다시 돌아 나온다. 또 다른 학생들은 이 입구에 당당히 들어가 ‘포스트모더니스트’가 된다(그 이후에 또다시 한눈팔고 나면 ‘포스트포스트모더니스트’가 되겠다만). 무엇이 이 두 무리를 차이나게 만드는가?

생각건대 ‘입구’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간주되곤 하는) 진리에 관한 입장은 “역사주의”라고 불릴 법한 것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진리라는 것은 절대적인 내지 초시간적인 자리에 있지 않다. 오직 진리는 현행적인 우리의 대화 속에서만 드러날 수 있으며, 이 대화는 역사의 한 점에 자리하는 바, 진리의 자리는 역사 내부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 입장을 따르는 이들은 역사를 정신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가령, 역사는 단지 자연적 대상들의 인과 같은 것이 아니다. 결국 진리란 개인 또는 집단의 정신 속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나는 이 입장에 얼마나 호의적인지의 여부가 두 무리를 가른다고 생각한다. 진리가 역사와 정신 안에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한 ‘모더니즘적’ 입장에 돌아갈 이유는 없다. 반면 진리가 그러한 위치를 갖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과 한 대열에 서는 것은 영 찜찜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 역사주의라는 것이 결정적 문제가 된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갖는 것이 마땅한가?

역사주의적 논변

먼저 우리가 어떤 길을 따라갈 때 역사주의에로 빠지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자. 일전에 “포스트모던 이후의 철학“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나의 글은 포스트모던 사고가 두 방식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하나는 계보학적 방식이다. 이 사고 방식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 논변은 결론부에 위치한다. 이 결론은 어떤 개념이 시기에 따라 그 관념체계(ideology) 속에서 서로 다른 위치를 갖고 있음을 보이는 것으로부터 따라나온다. 다른 하나는 해체적 방식이다. 여기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 논변은 전제부에 위치한다. 이 전제란, 모든 기호들은 그 쓰임에 있어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먼저 계보학적 방식으로부터 출발해 보자. 우리의 모든 진술에 있어, 그 진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우리의 관념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이다. 동일한 경험적 입력(그러한 것이 가정될 수 있다면)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관념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느냐에 따라 같은 진술은 상이한 진리값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계보학자들이 발견했기로 우리가 중추적이라고 여기는 개념들은 하나같이 그 관념체계 속에서의 위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다. 이를 통해 생각하기로 경험적 입력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그 맥락에 따라 진술은 참이기도, 거짓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은 모든 (적어도 모든 중요한) 진술들에게 적용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다음 결론을 내리곤 한다. 모든 진리는 미결정적이다.

이제 해체적 방식에서도 출발해 보자. 우리의 모든 진술에 있어, 그 진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우리의 해석이다. 의미론적 차원에서 동일한 진술(그러한 것이 가정될 수 있다면)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진술과 어떤 해석적 관계, 이를테면 ‘실존적 해후'(existentielle Begegnung)를 맺는지에 따라 해석은 달라진다. 그런데 이 ‘해후’를 기반짓는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정신적인 측면인데, 이 측면은 역사 속에 있는 것으로, 결코 필연적이지 않고 우유적인 것이다. 우리의 모든 진술은 해석을 통해서만 의미를 얻는다. 따라서 모든 진술의 의미는 우유적인 것이며, 이로부터 어떠한 진술도 필연적으로 참이거나 거짓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내려지곤 하는 결론은, 모든 진리가 미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두 사유의 방식 모두 진리의 미결정성 주장에로 나아가는 나름의 절차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 절차들이 다소간 성급한 순서를 밟는 탓에 오류를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그 성급함이란, 다름 아닌 ‘모든 진리가 미결정적이다’라는 결론에로 나아가는 바로 그 자리에 위치한다. 이들의 결론이란 둘 중 하나를 인정할 때에만 따라나오는데, 하나는 진술이 유일한 진리담지자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석이나 관념체계에 있어 이상적인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가정하는 것이 얼마나 그럴듯한가?

먼저 우리는 진술 외에도 이른바 ‘명제’라는 진리담지자의 후보를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진술이 필연적으로 동연적인 경우를 알고 있다. 상호 번역 가능한 두 진술 말이다. 이들의 번역 가능성을 보증하는 것을 우리는 ‘명제’라고 한다. 우리는 이 두 진술에 대해 동일한 것을 상상하는 것 같으며, 이 때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곧 명제이다. 이러한 명제가 이 세계의 진리담지자라면 그 자체로 특정 언어 또는 주관적 정신에 따라 다른 명제를 표현하게 되는 진술과 달리, 특정 상황에서 초역사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성립하는 명제적 사실들이란 존재하는 것이다. 이 사실들은 그것을 표현하는 명제를 참이게 만들며, 따라서 이때 명제의 진리는 사실로부터 결정된다.

또 우리는 때로 ‘인식적으로 이상적인 상황’을 상정하곤 한다. 우리의 인식과 사고는 오류 가능한 바, 우리가 정당화된다고 믿는 믿음마저도 실지로는 정당화될 근거가 없던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근거가 완비된 상황은 우리가 정당화나, 진리의 개념을 사용할 때 상정하는 그러한 상황 같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상적인 관념체계나 이상적인 해석이라는 것이 부정될 수 있는가? 이 해석의 방향과 우리의 관념체계 역시 인식적 상황의 일부인 것 아닌가? 일부가 아니라면, 대체 이들이 인식적 정당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그저 관념체계의 차이나 해석의 차이는 말투의 차이에 불과한 것 아닌가? 마지막 질문은 논의를, 앞서 언급한, 명제의 진리담지에 관한 문제에로 이끈다다.

이런 두 점으로부터 나는 역사주의의 결론이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주의를 추동하는 근거인, 이른바 존재론적 상대성이라는 것은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적 논제이지 않은가? 존재론적 상대성에 이끌리면서 역사주의를 부정할 수 있기나 한가? 이 점을 간략히 살펴보아야겠다.

콰인을 이해하는 두 방법

콰인을 생각한다. 분석철학사에 익숙한 이들은 콰인이 진리의 상대성 논제에 끼친 큰 영향력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가령 뒤앙-콰인 논제라는, 즉 관찰 결과에는 배경 이론의 영향이 반영된다는 과학철학적 논제를 우리는 알고 있다. 또 콰인이 제시한 ‘가바가이’라는 가상의 단어는, 단어의 지시란 그 지시를 이미 확정하는 (의심스러운) 메타 이론이 개입해야만 대상 언어에서 확정될 수 있음을 깨닫게 했다. 이런 그의 분석들로부터 콰인은 그의 1969년 논문집, Ontological Relativity and Other Essays(Quine 1969a)를 관통하는 주제를 제공하며, 서명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그의 논문 “Ontological Relativity”(Quine 1969b)에서 그 어떤 ‘원초적 번역’도 성공적일 수 없다는 것을, 모형 이론의 증명인 뢰벤하임-스콜렘 정리에 힘입어 주장했다.

그의 탁월한 논증들에 대한 한가지 반응으로 우리는 역사주의를 생각할 수 있다. 결국 모든 의미와 진리는 우리의 발화와 사용 속에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곧 역사적 요소이기에, 의미와 진리 또한 정신적 사실에 기반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어떤 진리도 필연적이거나 초시간적일 수 없는데, 우리의 역사적 배경인 현재적 관념체계와 해석적 틀이란 우유적이며 시간 내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콰인은 과연 이러한 역사주의적 귀결을 허용할 것인가? 우리는 콰인의 다른 면인, ‘자연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또한 알고 있다. 콰인은 그의 1960년 논문집, Word and Objects(Quine 1960)에서는 물론 상기한 1969년 논문집에 포함된 논문, “Epistemology Naturalized”(Quine 1969c)에서도 일관된 목소리로, 철학적 작업이라는 것이 과학적 작업과 괴리되어 있거나 그것의 상위에 있는 것이 아니며, 가령 인식론적 탐구와 같은 것은 (그 자체로 과학의 일부인) 심리학적 탐구로 대치될 운명에 있음을 말한다.

왜 콰인은 자연주의자인 것인가? 이른바 ‘노이라트의 배'(Neurath’s boat)에 관한 콰인의 반복적 언급이 그 이유를 잘 보여준다. 노이라트(Otto Neurath)가 제시하는 그림은 우리 인류를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선원들에 유비하게끔 한다. 우리의 관념 체계와 지식의 체계란 하나의 뗏목이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전적으로 떠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배를 조금씩, 조금씩 고치면서만 더 나은 배 위에서 항해할 수 있다. 배 자체를 버리고서는 항해, 즉 인지적 탐구를 조금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배는, 적어도 지금은, 다름 아닌 과학이라는 배이다.

이 배는 단지 허상인가? 또는 이 배는 단지 역사적인 어떤 것만을 제공하는가? 즉, 우리가 진리를 판별하는 이 체계는 허상에 불과하며, 상대적이고 역사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틀에 불과한가? 이는 그런데 ‘인식적 규범성’이라는 생각에 비추어볼 때 상당히 괴상하다. 어차피 우리가 그 자체로 참인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이 배를 뭐하러 타고 있으며 그 배를 수리할 이유는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나의 배가 다른 배보다 탐구를 위해 뭔가 더 쓸모있기에 이 배를 타고, 또 이 배보다 더 쓸모있는 배를 알게 되면 그 배를 타는 것 아닌가?

상식적 진리 대 역사 내적 진리

콰인의 독해는 진리에 관한 두 입장에로 각각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역사주의적 관점이다. 노이라트의 배에서 단순히 어떤 역사 내적으로만 의미를 갖는 기호들만이 제공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배는 지금 이 순간에만 쓸 만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적인 것으로 진리의 개념을 이해할 수도 있다. 가령 우리가 우리의 사유 틀로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무언가 비합리적인 세계 이해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러한 이해가 다분히 상식적이며, 이 상식적 이해야말로 우리에게 최대한의 진리를 허용한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상식적 진리라는 개념 이해가 보다 유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관점에서, 변화하는 것은 우리의 진리나 합리성 자체가 아니다. 세계는 그저 있고, 우리는 우리의 사고 틀 속에서만 그것을 이해하는데, 우리는 그 세계가 그저 있는 방식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 틀을 수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진리나 합리성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의 폭과 그것을 아는 데에 사용하는 길이 변화한다.

이 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퍼트남의 쌍둥이 지구 논변이다. 내가 갖고 있는 과학적 지식 하에서는 H2O와 XYZ를 전연 구분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여하간 그 둘은 그것의 본질적 속성인 분자 구조로부터 서로 다른 것이 된다. 그 둘은 애초에 달랐던 것이고, 우리는 과학의 틀을 통해 그 차이를 알게 된 것이다. 과학의 틀이 그 차이를 야기한 것도 아니며, 우리 마음의 차이가 그 차이를 야기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과학의 틀 없이 그 차이를 포착할 수는 없었겠고, 아마도,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의 틀 외에도 이들을 식별할 틀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계보학이나 해체로부터 발견하는, 진술의 진리에게 부과된 필연적 우유성이란, 진리 그 자체에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진술의 진리라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의 표현이 갖는 포착 가능성의 한계에 달려 있는데, 이 가능성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계보학과 해체가 발견했고, 또 콰인이 한때 발견한 점이었을 뿐이다. 진술의 진리가 모종의 내재적 관점에서 파악되는 때에도, 그 진리를 참으로 만드는 사실이나 명제는, 본질상 외재적이다. 그리고 이 외재적인 것을 진술은 단지 의미의 차원에서 예화하고 있을 뿐이다. 이 그림에서 진리는 그 자체로서는 도저히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각설하고 결론을 내리자. 진리에 대한 역사주의 논증은 부당하다. 그것은 진술의 진리를 진리 일반에로 확장하거나, 현행적인 인식적 조건을 유일한 인식적 조건으로 확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상식적인 관점에서, 그렇게 확장된 방식으로 우리의 진술과 인식적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상식적인 관점은, 진리 자체는, 이상적인 정당화 조건 자체는 우리의 마음에 구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외재적인 것이 진술의 참과 믿음의 정당화를 위한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상식적 관점’에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역사주의적 귀결은 논증의 전제로부터 나오는 유일한 결론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많은 계보학적, 해체적, 콰인적 사례들을 만나더라도, 이로부터 역사주의적 진리 이론을 따를 이유는 없다.


인용 문헌

Quine, Willard Van Orman. 1960. Word and object. Mass. Cambridge: MIT press.
⎯⎯⎯. 1969a. Ontological Relativity and Other Essays. NY: Columbia University Press.
⎯⎯⎯. 1969b. “Ontological Relativity”, in Ontological Relativity and Other Essays(NY: Columbia University Press), 26-68.
⎯⎯⎯. 1969c. “Epistemology Naturalized”, in Ontological Relativity and Other Essays(NY: Columbia University Press), 69-90.

여정
benedict74@yonsei.ac.kr
지평 기획 총괄. “일상적인 것의 재발견” 기획자. 형이상학, 언어철학, 미학,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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