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 (2019.) 「펀펀 페스티벌」, 『문학동네』 , 26(4): 1~30

1. 연기와 거울​*​

여기 한 마술사가 있다. 그는 당신 앞에 한 덱deck의 카드를 펼친다. 그리고 당신에게 52장의 카드 중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고른 후, 마술사 자신이 절대로 보지 못하도록 몰래 확인하라고 한다. 당신이 카드를 확인했다는 신호를 보내자, 마술사는 당신에게 선택한 카드를 다시 덱의 아무 곳에나 집어넣고 덱을 정리하라고 한다. 당신이 덱 정리를 마치자 마술사는 덱을 집고 마구 섞기 시작한다. 덱을 어느 정도 섞고 그는 카드들을 쭉 살펴 보더니 단 한 장의 카드를 선택하여 책상 위에 보이지 않게 엎어 둔다. 마술사가 당신이 선택한 카드가 무엇인지 물어본다. 당신은 선택한 카드를 말해 준다. 마술사가 책상 위의 카드를 뒤집는다. 당신이 선택한 카드다.

여기 또 다른 마술사가 있다. 그는 앞선 마술사처럼 당신에게 카드 한 장을 선택하게 하고, 다시 덱에 집어넣게 한다. 이후 그도 덱을 마구 섞고, 카드를 한 장을 책상 위에 둔다. 다만, 이번 마술사는 당신이 선택한 카드를 말해 주었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 둔 카드를 불안한 듯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당신에게 ‘정말 그 카드가 맞지요?’ 되묻는다. 당신은 고개를 끄덕인다. 마술사가 책상 위의 카드를 뒤집는다. 당신이 선택한 카드다.

스페인 마술의 거장, 후안 타마리즈Juan Tamariz는 ‘관객들이 단 몇 초만이라도 꿈속에 있는 기분이 들게끔 하는 것’이 자신의 목표임을 밝히고 위와 같은 서들티subtlety​†​들을 자신의 책 The Magic Way에 소개한다. 왜 두 번째 마술사의 서들티가 포함된 연출이 더 효과적일까? 그것은 관객에게 있어 마술이 잘못 진행되었다는 걱정, 내가 속지 않았다는 뿌듯함, 잘난체하는 마술사에 대한 쌤통, 앞으로 마술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기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정서들의 강렬한 진자운동 속에서 마술사가 선택한 카드가 나의 카드와 일치함을 보았을 때, 그 마술적 효과는 하나의 기적처럼 극대화된다. 즉, 마술사가 선택한 카드가 관객의 카드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저 작은 서들티는 ‘마술사가 선택한 카드는 나의 카드와 일치할 것이다’라는 관객 머릿속의 논리가 ‘의미화 혼돈과 강렬도의 연장’​‡​을 지나게끔 한다. 또한 서들티를 통해 형성된 ‘꿈 속 분위기’는 52장의 가능성이 살아있는 곳이다. 비로소 마술사의 카드와 관객이 본 카드가 일치함을 확인하는 순간에야 52장의 가능성들이 한 장으로 공제substract되어, 수많은 정서가 걸친 강렬도가 ‘신기함’과 ‘놀람’으로 귀결되고, 하나의 마술 루틴이 의미를 갖고 끝난다.

서들티는 연속적인 정서 “이행과 변이​§​”의 과정을 만든다. 다시 말해서, 마술이 더욱 마술다워 보이게 하는 데에는 서들티로 대표되는 정동affect적인 순간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첫 번째 마술사의 연출이 마술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가 제시하는 분위기가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같은 결과와 의미로 끝나더라도 두 마술사가 주는 효과가 다른 것은 “이미지 수용에 있어 정동이 가장 우선한다”는 브라이언 마수미의 말처럼, 정동적 동요가 독자인 우리로 하여금 실제로는 이미지를 더욱 역동적인 것으로 수용하고 이미지의 가상계virtual까지 도달할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흔적 아닐까?

2. 레디, 액션! 연기 같은 분위기

처음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을 읽으며 나는 꽤나 실망했다. ‘이렇게 리얼한 것이 문학이라고?’가 첫 번째 든 생각이었고, 이어서, 과도하게 디테일한 이미지들을 굳이 나열해야 했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화자인 ‘나’의 생각들이 그 어떤 낭만 없이, 가감 없이 노출된 것에서 중학생의 일기를 읽는 듯한 기분도 지울 수 없었다. 허나, 졸작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이 소설이 내게 남기는 어떤 불편함이 있었다. 담배를 핀 만큼 폐부에 들러붙은 끈적한 타르 같은 어떤 솔직한 찝찝함.

어쩌면 이 소설이 자아내는 요상하고도 답답한 “합숙 면접”과 “송년회”의 분위기가 소설을 읽던 내게도 연장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분위기야말로 네오리얼리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아래 인용문을 통해 「펀펀 페스티벌」의 화자가 느끼는 “합숙 면접”의 분위기를 먼저 소개하고자 한다.

한없이 구린 패션보다 더 우울한 것은 이곳을 압도하고 있는 묘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세명그룹 신입사원 자리를 두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 사이였다. 아니, 그걸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협력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차라리 경쟁만 해야 하는 거라면 조금 나았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일렬로 늘어서서 직선으로 달린 다음,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에게만 기회를 주는 그런 단순한 것이었다면, 전력으로 질주하거나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할 수 있었다면, 마음이 그렇게까지 부대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2

나는 누가 현수막을 내리고 있는 것인지, 어디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 고개를 높이 쳐들었다. 그러나 시야에 들어온 건 때마침 켜진 조명기구의 하얀 빛뿐이었다. 그 강렬함에 나는 이내 눈을 질끈 감아버려야만 했다. 현수막을 매단 끈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19

화자인 ‘나’는 협력도 경쟁도 아닌 면접에서 일종의 “부대끼는” 교착상태impasse를 느낀다. 일인삼각, 아니, 일인다각 경주에서 오로지 한 사람에게만 상품을 주는 경주라니. 허나, 이것이 아니면 ‘나’는 다시 “주어진 테마에 맞게 삼천 자 이내로 자기를 소개해야 하는, 인생에서 가장 지리멸렬하고 굴욕적인 글쓰기”(8)를 다시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가 생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잔인한 경주의 반복이다. 화자는 반복된 교착상태 속에서 “간절함”이라는 정서 속을 죽은 듯 살고 있다. 그런 그녀는 모두가 이런 면접 방식이 당연한 듯 행동하는 분위기에, 또 면접장이 내뿜는 “강렬함”에 정동되어 자신의 인지 이전에 행동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일어나 척추를 접었고, 접으면서 스스로 놀랐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저 사람이 면접관이고 잘 보여야 하니까 예의바르게 인사해야지, 라는 사고의 흐름을 거치기도 전에 척수에서부터 반응해 반사적으로 허리가 훅 접혀버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22

‘나’에게는 면접의 분위기에 휩쓸려 정신이 인지하기 전의 “척추를 접”어야 하는 어떤 관념이 존재하고, 그것은 ‘나’의 신체를 변용, 즉, 실제로 “척추를 접”도록 한다. ‘나’가 친절한 척, 예의 바른 척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반사적으로 일어나도록 가상계에서 ‘나’는 면접의 분위기에 정동되어 있다. 정동의 단서는 단순히 화자인 ‘나’뿐만 아니라 송년회에 취한 사람들에게서도 보인다.

가사는 여전히 엉망이었다. 영어도 불어도 아닌 대충 각운만 맞춘 이상한 언어로 지어내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말도 안 되는 영어에 오그라든 내 작은 마음을 펼 수 있었다. 그래, 이 노래는 ‘돈 스톱 미 나우’랑 ‘해빙 어 굿 타임’만 알면 되는 노래지 뭐. 어떤 사람은 전부 알아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데 왜 어떤 사람은 조금만 알아도 다 아는 것처럼 나설 수 있는 걸까. 어느새 핀 조명이 이찬휘에게로 떨어져 있었다.

27

하나의 고정된 가사, 완벽한 가사와 다르게 사람들은 송년회의 분위기라는 것에 취해, 이상하게 부른 가사는 신경쓰지 않고, 음악에 환호하며 육체를 계속된 움직임 속에 둔다. 신체/정신 이분법의 인과관계에 갇히지 않은 채 그 분위기에 휩쓸린다면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상태에 ‘나’가 놓여 있다. 무대 위로 흩뿌려진 짙은 연기를 헤집는 화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역동성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3. 껍데기만 와라! 거울 같은 껍데기

하지만 이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명징한 것이 있다. 바로 이찬휘의 빛나는 외모로 대표되는 “껍데기”다. 이것이 나고, 저것이 너야, 비춰 주는 껍데기.

나는 그애의 얼굴을 허겁지겁 눈에 담았고 면면히 훑었다. 끊임없이 바쁘게 힐끔거렸다.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치 그애를 보고 있는 동안은 무언가 좋은 것이 내 주머니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다는 듯이, 그래서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필사적으로 주워 담으려는 듯이.

11

이찬휘는 자신의 매력적인 껍데기를 앞세워, 그것을 정동이 일어나는 신체 변용의 장소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동을 일으키는 껍데기발發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는 ‘나’가 이찬휘의 모습을 보며 정서와 상상의 고정되지 않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장면에서, 또, 이찬휘가 ‘뱅뱅’의 한 소절을 부르는 부분에서 드러난다.

보컬 칸에 나란히 적힌 이찬휘와 내 이름을 본 순간, 내 망상은 나란히 합격, 비밀 연애, 사내 커플, 결혼식장 로비에 세워진 세명그룹 회장의 화환, 고부갈등까지 단숨에 치솟았다가 그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신속히 가라앉았다.

6

그 엄청난 시선을 모두가 의식하고 있었는데 그걸 이찬휘 혼자만 못 본 것처럼 행동했다. […] 이찬휘를 향해 있던 조원들의 고개가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를 향하는 동작이 슬로 모션이라도 걸린 듯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 그 시선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숨이 턱, 턱 막혀왔다.

10

이찬휘의 껍데기가 정동을, 역동을 일으킨다면 ‘나’의 껍데기는 분위기에 잡아먹혀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자 “숨이 턱, 턱 막”히는 신체적 증거부터 이상한 “쪼”에 대한 이찬휘의 지적 이후 “나는 나의 ‘쪼’에 사로잡혀 있었다”(19)는 자책까지. ‘나’는 오히려 나의 껍데기를 하나의 소멸해야할 혐오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과장된 목소리, 과장된 표정, 과장된 몸짓.
보기 싫었다. 추했다. 이찬휘가 날 흉내내고 있었다. 그건 내가 아니었고, 내 노래가 아니었다. 거짓말, 내가 정말 그렇게 부른다고?

18

만약 내가 동아리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연습하고 트레이닝 받았다면 이런 ‘쪼’가 없었을까? […] 그렇게 스펙을 쌓아놨더니 이제 와서 끼와 개성, 창의성을 펼치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쪼’나 고칠걸.

20

어쩌면 ‘나’가 “먹태 냄새가 밴 손가락을 하나 하나 꼼꼼히 씻고 종이 타월로 닦은 뒤 핸드크림을 발랐”(27)던 것도 자신의 껍데기를 부정하는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안주가 되는 먹태와 내 손가락 사이의 “냄새”라는 신체 변용의 연장조차 숨기고 싶어하는 ‘나’에게서 자신의 껍데기가 단순히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면 ‘나’는 어디에서 나의 정동적 힘의 증거를 찾아야 하는가?

4. 오프비트Off-beat

‘나’의 역동성은 분위기에도, 껍데기에도 있지 않다. 내가 주변 사회의 약자처럼 느껴질 때, 또, 동시에 잘난 것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그 사이의 괴리감에서도 ‘나’는 여전히 역동적이다.

역시…… 남자가 봐도 잘생기긴 했나보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조금씩…… 서서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의문에 잠겨들었다. 레몬맛 탄산수는 너무 차가워서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왜 여기서 이렇게…… 이상한 옷을 입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랑…… 심지어 성격도 하나같이 이상하고…… 나만 정상인인 것 같아……

16

공연을 준비하는 9조의 분위기가 과열되고 이찬휘의 껍데기가 그 분위기의 결에 맞물리지 않을 때, ‘나’는 두통을 느낀다. 과도한 말줄임표가 제시하듯 이 두통은 분위기와 껍데기, 두 정동을 일으키는 것에 의문을 품게 하고 제약을 건다. “하나같이 이상하”게 보이는 이 교착상태의 순간, ‘나’는 분위기와 껍데기가 제시하는 정동 사이에서 진자 운동하다가 “레몬맛 탄산수”(이도 자신이 선택한 음료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를 마시는 순간 부정맥 같은 새로운 자신만의 호흡을 만들어낸다. 이찬휘를 처음 봤을 때 놀라서 들이마시는 숨, 혹은, 옥죄어오는 면접장의 분위기가 막히게 하는 숨이 아니라 자신만의 끊어진, 허나, 통시적으론 연결된 들숨과 날숨으로 한 정신을 통해 나아간다. 오프비트의 관념이 “레몬맛 탄산수”와 면접에 대한 거부감 사이에 늘어져 있다. 오프비트적 “두통”의 감정은 송년회에서도 이어진다.

그 순간 죽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러운 건 이찬휘가 내 어깨에 함부로 손을 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아직 그 손이 그렇게까지 싫게 느껴지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젠장, 어떡하지? 아직도 너무…… 잘생겼어. 분명히 말하지만 이찬휘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나는 이제 이찬휘의 모든 것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다만 저애의 얼굴과 몸, 그 껍데기만 빼고. 그건 아직까진, 아무리 봐도 싫어지지가 않았다. 그걸 싫어하지 못하는 나 자신만 자꾸 싫어질 뿐, 나는 누구에겐지 모르게 다급히 변명했다. 껍데기일 뿐이지만 이런 껍데기는 귀하다고.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다고…… 그리고 다시 어딘지 모를 반대편을 향해 외쳤다. 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정말 쓰레기야. 난 육신의 노예야. 제발 누가 날 좀 말려.

28

‘나’는 이찬휘의 껍데기를 좋아하는 ‘나’의 껍데기와 또 그의 껍데기가 자아내는 분위기가 싫은 정신 사이에서 마구 진동하고 있다. 신체/정신 중 어느 곳도 선택하지 못하고, 결국 이 두 가지 모두가 나임을 인지해가는 과정 중에 ‘나’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나’가 송년회 자리를 나와 버스를 타러 가며 버스 번호에서 “어지러움”을 느꼈을 때, 그리고 “어딘가로부터 퍼져나오는 밝고 인공적인 빛”을 느끼고 “겨울에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먹”(29)을 때, ‘나’는 계속해서 변용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분위기도, 어떤 껍데기에도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정동, 자신의 “쪼”(29)를 찾기 위해.

5. 마술 극장을 나가며

따라서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은 우리에게 어떤 분위기 속을, 혹은 어떤 껍데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제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그 사이에서 나의 “쪼”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역동적인 나의 껍데기이자 분위기이며, 정동의 시발점임을 제시한다. 애초에 마술이란 마술사가 아니라 관객 된 내가 카드를 뽑아야 시작하는 것이고, 카드를 뒤집어야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하나의 분리된 정동은 없겠지만, 동시에 내가 주변의 정동적 힘에 영향만 받는다고 상심해서도 안될 터이다.


  1. ​*​
    Smoke and mirrors. 한 물체가 부유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술 장치.
  2. ​†​
    Subtlety를 글자 그대로 번역한다면 ‘미묘함’이겠지만, 마술에서의 subtlety는 마술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말, 손동작, 시선, 자세, 조명, 음향 등과 같은 디테일과 분위기를 통틀어 지칭한다. 마술 용어로서의 고유성을 생각해 여기선 영어 발음대로 적고자 한다.
  3. ​‡​
    브라이언 마수미는 의미에 대해 “의미화 질서와 강렬도의 단절”이라고 말한다(Massumi, Brian. 2011. 『가상계—운동, 정동, 감각의 아쌍블라주』. 조성훈 역. 갈무리. 49p). 필자는 의미를 잠시 주춤하게suspend 만드는 서들티의 순간을 ‘의미화 혼돈과 강렬도의 연장’이라는 말로 적어본다.
  4. ​§​
    Deleuze, Gill. 역 Timothy S. Murphy. “Sur Spinoza”, 1978, https://www.webdeleuze.com/textes/14 (2020.5.27. 확인)
박필
blueyuns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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