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 1.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어떤 (가정된) 물음 혹은 이의제기에 답을 정해두었던 것 같다. “아니요, 나는 ‘우리 세대’ — 내가 속한 세대 — 를 대변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이 세대를 어떤 담론들 속에서, 어떤 담론들과 연결지어 말해야 할까?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세대, 권위적인 것에 대한 민감한 거부감을 가진 세대, 합당한 절차와 공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 어떤 의미에서 (이 말을 쓰기가 아주 조심스럽다······ 아마도 적절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가장 세속적인 (혹은 속물적인) 세대,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고 어려운 경쟁을 요구받게 된 세대, ‘노력에 비례한 보상’의 제도를 요구하는 세대, 혹은 적어도 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는 세대, 뛰어나야 겨우 ‘먹고살’ 수 있게 된, 또는 적어도 그렇다고 들어 온 세대,  ‘학습된 무기력’의 세대,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 가장 정치적인 세대, 갑작스럽게 거대한 페미니즘 담론(그리고 소수자 담론)과 논쟁 속에 빨려들어간 세대, ‘정치적 올바름’을 그 어느 때보다도 엄격하게 요구하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하고 (적어도 겉보기에) 지적인 방식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증오하는 세대, 그리고 모든 세대가 그랬듯이 자신들이 어떤 이들인지 모르는 세대······ 아마도 더 많은 담론들의 교차점에 우리들이 있을 것이다. (위의 열거는 내가 만나고 겪은 것, 그리고 미디어를 통하여 내가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작성해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이 내가 속한 이 세대에 대한 정확하고 날카로운 표현이나 통찰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목록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은 아니라고 할 지라도, 적어도 이 세대에 속하지 않거나 조금의 관심만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 비춰진 것, 그리고 이 세대 속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나의 눈에 비춰진 것을 뒤섞어 놓은, 임의적이거나 자의적이거나 심지어 오해를 수반한 것일 수 있다.) 물론 나는 이 세대에 속한 이들 중 한 명이므로, 나 또한 이 세대가 통과해온 담론들과 무관하지 않고 이 세대의 문제들에 공감하고 그 문제들이 낳은 자식들과 친연관계에 있으며, 그리하여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세대에 애착 또한 느끼고 있다. 그러나 자주 환멸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가 우리 세대라고 부른 것은, 설령 공통의 담론, 공통의 문제, 거기서 거기인 곤란 혹은 엇비슷한 폭력, 피해와 가해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을 지라도,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다른 집단이나 단체, 이를테면 ‘민족’과도 마찬가지로, 내가 나를 투영하고 나 자신과 동일시하여 ‘나’라는 주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단일한 실체이자 주어인 ‘세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우리 세대를 대변해서 우리 세대 특유의 어려움, 난관, 고통······ 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내가 (적어도 다른 시대 다른 공간의 사람들보다는) 잘 아는 우리, 오늘 여기의 우리를 발가벗기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인 것, 오늘 여기의 우리 세대를 이루는 것은, 우리들의 젊음과 상관 없이, (우리들 각자 그리고 그 각자의 개별적이고 실제적인 고유한 삶들에 대하여 볼 때) 기성의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려는 작업은 내가 속한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분적이 아니며, 이 세대에 이름을 붙여주려는 일도 아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비판 작업이지만, 담론들의 뒤엉킴 속에 하나의 담론을 추가하는 것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계속하는 실천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려는 것은 나 또한 속해있는 우리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이며, 비판이 우리 자신을 향할 때 그것은 단지 반대하고 거부하는 것, 적이 누구인지를 판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다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해, 내가 생각하기에 비판이란 자신이 속한 어떤 단체나 집단을 대변하고 아군과 적군을 설정하여 적군에 무자비한 맹공을 퍼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이에 대해서 거칠게나마 얘기해보고자 한다.
 

미셸 푸코 – 1.

1975년 『감시와 처벌』이 출간된다. 이듬해인 1976년에는 『성의 역사』의 제1권인 『앎의 의지』가 출간된다. 이 책에서 우리는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수행한 지식-권력에 대한 분석이 확대·변주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권력이 어떻게 작동되는지에 대한 분석은 오히려 『앎의 의지』에서 더 직접적이고 명료하게 제시되어 있다. 다만 여기에서 문제는 신체와 규율이 아니라 “성의 담론화”이다. 『앎의 의지』는 (디디에 에리봉의 푸코 전기 초판이 나온) 1989년에 이미 10만부까지 발행되었다.¹ “책으로서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그러나 푸코는 여기서 멈춰섰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성의 역사』의 다음 권인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는 1984년, 푸코가 사망하기 직전에야 출간된다. 이 간격를 두고 푸코의 사유는 (그리고 문체 또한 더불어) 많은 변화를 보인다. 푸코의 지적 여정에서 처음으로 고대 그리스의 텍스트들이 분석되며, 처음으로 ‘주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저작의 중심 주제로 부각된다. 지식과 권력의 계보학에 더하여 ‘주체의 계보학’, 자기가 자기와 맺는 관계의 계보학이 문제가 된다.
어떻게 이런 사유의 지각변동이 가능했을까? 아마도 푸코의 저술들에 흥미를 가지며 그것들을 탐독해본 독자라면 이 8년간의 침묵, 단절, 선회, 그리고 재개가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아있을 것이다. 들뢰즈는 권력의 개념을 철저하게 파고들어간 나머지 막다른 길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한다. 많은 사람들이, 푸코가 어떤 한계에 부딪쳐서 자신의 기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 푸코는 권력에 대한 탐구를 멈추고 서구 문화에서 주체가 스스로를 주체로 형성하는 계보를 좇았을까? 권력의 계보학이 말해줄 수 없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이른바 ‘단절’ 이전과 이후의 푸코가 전혀 다른 사람일리가 없다. 우리는 차분해진 문체와 더불어 그가 여전히 계보학의 방식으로 탐구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여전히 그가 ‘사유체계의 역사’라고 불렀던, 필생의 탐구 주제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제 나는 물음을 바꾼다. ‘왜 푸코는 권력에 대한 분석에서 방향을 틀어 자기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 자기 수양의 개념과 그 변화를 추적하게 되었는지’가 아니라, ‘이와 같은 지적 관심의 전환을 해명해줄, ‘빠진 고리missing link’가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물음으로 돌아설 때,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찾아내고 고찰해볼 때, 아마도 푸코 말년의 사유를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처 독립적인 저작으로 출간되지 않고, 다만 푸코의 육성으로 개진되었고 뒤늦게 엮여 나온 단행본들 속에서 나타나는 탓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그 빠진 고리는 바로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Was ist Aufklärung?〉라는 텍스트에 대한 논의에서 드러나는 비판(계몽)의 문제, 그리고 고대의 텍스트들 속에서 발견해내고 정립한 파레시아parrêsia라는 개념이다.
 

미셸 푸코 – 2.

1978년 5월 27일, 미셸 푸코는 소르본에서 프랑스 철학회 주관으로 하여 ‘제목 없는’ 강연을 한다. 이것이 1990년 프랑스 철학회에 의해 〈비판이란 무엇인가?Q’est-ce que la critique?〉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된다. 푸코는 실은 칸트의 텍스트 제목을 그대로 강연의 제목으로 달고 싶었으나 망설였으며, 자신이 다루고자 한 문제는 ‘비판이란 무엇인가’하는 문제였다고 말한다. 그 텍스트가 바로 칸트가 1784년에 《베를린 잡지Berlinische Monatsschrift》가 제기한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실린 짤막한 글인 〈계몽이란 무엇인가?〉이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푸코는 서구의 비판 전통에서 두 가지 갈래를 본다(이 ‘구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볼 것이다). 그중 하나는 푸코가 이후에 “진실의 분석학”, “인식의 비판적 분석”이라고 부르게 될 것으로서, 곧 인식론적 비판, 칸트가 자신의 책의 제목으로 사용하는 바로 그 ‘비판’이다. 다른 하나는 칸트가 ‘계몽’이라고 부른 것이며 푸코는 바로 여기에서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비판적 태도’와 같은 것을 본다. 푸코는 칸트의 텍스트에서 다음과 같은 몇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칸트가 “인류가 거기에 머물러 있고 또 머물도록 강제당하는 어떤 미성숙 상태와 연관시켜 계몽을 정의”했다는 점, 그리고 이 미성숙은 ” 타인의 인도 없이는 자신의 오성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상태”로 정의한다는 점, 즉 이러한 무능력을 “권위의 과잉과 무능력이 맺는 상호 관계를 통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단력 및 용기의 결여와 무능력이 맺는 상호 관계를 통해 정의했다”(〈비판이란 무엇인가?〉,『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심세광, 전혜리 옮김, 동녘, 49쪽.)는 점이다. 푸코는 칸트의 계몽 정의로부터, 그리고 이 강연이 있기 불과 얼마 전 콜레주드프랑스에서의 강의 〈안전, 인구, 영토Sécurité, territoire, population〉에서 처음 드러낸 ‘통치성’의 개념과의 연관 속에서 비판을 정의한다. 비판이란 “어떻게 하면 이런 식으로, 이들에 의해서, 이런 원칙들의 이름으로, 이런 목표들을 위해, 이런 절차를 통해 [···]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이런 식으로, 또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 통치받지 않으려는 기술”(같은 책, 44-45쪽.)이다. ‘전혀 통치받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는 아니다’라는 것이 곧 비판적 태도라는 것에 주목하자. 이것은 곧 “어떤 사유 방식, 말하는 방식, 또 행동하는 방식이고, 존재하는 것과의 어떤 관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의 어떤 관계, 우리가 행하는 것과의 어떤 관계이며, 사회 및 문화와의 관계, 또 타자들과의 관계”(같은 책, 40쪽.)이다. “비판이란 진실에 대해서는 그 진실이 유발하는 권력 효과를, 권력에 대해서는 그 권력이 생산하는 진실 담론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권리를 주체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과 관련된 활동”이며,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 숙고된 불순종의 기술”, 즉 “진실을 둘러싼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 속에서 탈예속화를 그 본질적인 기능으로 갖는 것”(같은 책, 47-48쪽.)이라고 푸코는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비판과 함께 ‘주체’가 등장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1978년의 푸코는 “비판적 태도의 역사”를 기술하려 할 뿐 주체가 자기와 맺는 관계 같은 것은 아직 문제가 아니다. 푸코는 칸트의 계몽에서 통치성에 반하는 활동으로서의 비판을 이끌어내고 이것을 곧 “지식-권력 결합체”(같은 책, 67쪽.)를 분석하고 기술하는 고고학과 계보학에 연관짓는다.
 

미셸 푸코 – 3.

여기에 똑같이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로부터 출발해서, 똑같이 거기에서 비판을 이끌어내는 텍스트가 있다. 그러나 푸코는 여기에서 비판을 다른 방식으로 논하며, 1978년에 그랬던 것과 같이 비판을 통치성에 대한 저항, 지식-권력 결합체에 대한 분석과 기술과 연관짓지 않고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와 결부시킨다. 바로 이 주제가 이 글의 제목이며, 이후에 이와 유사한 표현이 『성의 역사』 제 3권의 제목이 될 것이다.
1970년대부터 이미 여러 차례 미국을 오갔던 푸코는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에서 ‘교환교수’ 자격으로 여러 차례 강연을 했다. 1983년 4월에도 이런 강연이 열렸는데, 2천 명이 넘는 청중이 몰려들어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극장에서 강연을 해야 했다.² 강연의 제목은 〈자기 수양〉이었으며, 뒤늦게, 최근(2015)에서야 녹음 자료와 강연를 위한 원고를 바탕으로 편집되어 같은 제목으로 달고 출판되었다. (앞서 소개한 〈비판이란 무엇인가?〉와 함께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한국어판은 위에서 인용한 『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심세광, 전혜리 옮김, 동녘, 2016.) 아마도 푸코는 칸트의 계몽에 관한 텍스트를 처음 접한 이래, 그가 『성의 역사』의 나머지 권을 쓰기 위해 겪어야 했던 머뭇거림, 시행착오, 중단, 폐기, 다시 시작하기······의 과정 동안, 그리하여 그가 점차 시대를 거슬러올라 고대 그리스 문헌에 다다르는 동안, 그리고 그가 죽기 직전까지, — 왜냐하면, 실은 텍스트가 하나 더 있는데, 1984년 미국에서 칸트가 말한 바 계몽에 더해 근대성과 비판에 관해 논하는 텍스트가 (1978년의 푸코가 제목으로 달기를 주저했던 그 이름, 칸트의 텍스트 제목과 같은 이름을 달고, 단 영어로)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 이 계몽에 관한 짧은 글을 지속적으로 혹은 적어도 간헐적으로 다시 읽어왔던 듯하다. 푸코는 자신이 해온 작업, 그리고 모종의 변화와 수정을 거쳐 재개하고 있는 계보학적 탐구가 비판적 활동에 속한다고 한결같이 생각했으므로, 칸트의 텍스트를 통해 비판에 관해 고찰하는 것은 그에게 자신의 사유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향해 있는지를 점검하는 도구였을 것이다. 하여튼 5년여에 걸친 시간 동안, 비판에 관한 텍스트들을 비교해볼 때, 무엇인가가 달라졌다. 이제 푸코는 칸트의 계몽에 대한 텍스트에서 그가 현재성에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을 읽어낸다. 그는 “칸트의 이 텍스트와 그가 역사에 헌정한 다른 텍스트들 간의 관계”(“What is enlightenment?”, The Foucault Reader, edited by P. Rabinow, 32-50. Pantheon Books, 1984. 번역은 필자.)에 주목하여, “이 짤막한 텍스트는 어떤 의미에서 비판적 성찰과 역사에 관한 성찰이 만나는 교차로에 위치해있다”(같은 글)고 단언한다. 푸코에게서 역사성이란 곧 현재에 이르는 계보, 즉 현재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덧붙일 필요가 있을까? 요컨대 푸코는 칸트가 “글을 쓰는 그 순간, 그가 속해 있는 바로 그 순간의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속성, 의미, 의미화의 문제”(〈자기 수양〉,『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97쪽.)를 철학적 성찰의 장에 새롭게 제기했다고 본다.

19세기 초 이래로 철학 활동의 장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로 환원될 수 없는 두 극이 발견되는 것 같습니다. 이 둘중 한 극에서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를 인식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와 같은 물음들이 발견됩니다. 이거은 진리의 형식적 존재론 혹은 인식의 비판적 분석에 해당하는 철학의 극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극에는 “우리의 현실태actualité는 무엇인가? 이 현실태에 참여하는 한에서의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가 우리의 현실태에 속해있는 한에서 우리의 철학적 행위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들이 발견됩니다. 이러한 물음들은 제가 우리 자신에 대한 역사적 존재론 혹은 사유에 대한 비판적 역사라고 부르고자 하는 바를 논하고 있습니다. (〈자기 수양〉,『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99쪽.)

1983년의 푸코에게 비판의 문제는 “현재의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관련된다. 이후로 푸코는 자신의 작업, 자신이 이미 해온 계보학적 작업들과 앞으로 남은 계보학적 작업들을, 오늘날의 우리를 성찰하기 위한 비판적 작업으로 바라볼 것이다. 비판의 문제에서 오늘이라는 것과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하나의 쌍을 이룬다. 푸코는 자신의 목표가 “우리 사유의 역사[···]가 어떻게 해서 우리 자신을 현재의 우리로 만드는가?”(같은 글, 100-101쪽)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푸코는 1984년 미국에서 출판된 글에서 더욱 명확하고 날카롭게 비판, 즉 역사적-비판적 태도에 관해 논한다.

비판은 현재의 우리인 것의 형식으로부터 우리가 할 수 없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연역해내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다만 우리를 현재의 우리인 것으로 만든 우연성으로부터 더 이상은 현재 우리인 것이 아니며 현재 우리가 행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을 분리해내는 것이다. [···] 이것은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널리 자유의 정의되지 않은 작업에 추동력을 부여하려는 일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적 존재론은 이론으로서도, 교의로서도, 축적되고 있는 영구적인 지식체로서도 여겨져서는 안 되며, 다만 현재의 우리인 것에 대한 비판이 우리에게 부과되는 한계들에 대한 역사적 분석인 동시에 그 한계들 너머로 나아갈 가능성에 대한 실험인, 하나의 태도, 에토스, 철학적 삶으로 여겨져야 한다.

(“What is enlightenment?”, The Foucault Reader, 32-50. 강조 및 번역은 필자.)

이렇게 하여 앞선 두 개의 계보학(진실 혹은 지식의 계보학, 권력, 규율, 의무의 계보학)과 더불어 하나의 계보학이 추가된다. “우리 자신에 대한 모든 존재론적 역사는 일련의 세 관계들, 요컨대 우리가 진리와 맺는 관계, 우리가 의무와 맺는 관계, 우리가 우리 자신 및 우리의 타자와 맺는 관계들을 분석해야 한다.”(〈자기 수양〉,『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100쪽.) 푸코는 비판의 문제를 새롭게 정립함으로써 자기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에 대한 계보학, 서구 문화에서 주체가 진실과 맺는 관계, 스스로를 주체로 형성하는 관계에 대한 계보학으로 나아간다. 이 강연(〈자기 수양〉)의 나머지 부분은 고대 그리스에서 중요했던, 아마도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의 계보에서 뿌리와도 같은 것이지만 오늘날 여러 이유로 잊혀지고 만 자기 돌봄epimeleia heautou, 혹은 자기 배려의 개념을 고찰하는 데 할애된다.
푸코에게 자기 작업의 정체성과도 같은 이 비판의 문제, 즉 우리 자신에 대한 역사적/비판적 존재론이 자기가 자기와 맺는 관계,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정립하는 관계에 대한 계보학으로 이어지는 데에 어떤 거리감이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고대의 텍스트들 속에서는 근대적인 용어로 ‘비판적 태도’라고 번역될 수 있는 개념, 진실-말하기의 개념이 실제로 자기를 돌보는 기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나타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진실의 문제와 주체의 문제에 모두 닿아있다는 점이 푸코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파레시아parrêsia라고 부르는 이 개념에 대한 탐구는 아마도 푸코가 마지막으로 파고든 중요한 주제였을 것이다. 푸코가 1984년 6월에 삶을 마감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성의 역사』의 제3권 『육욕의 고백』의 교정을 끝내고 났더라면 바로 이 탐구에 단행본 하나를 바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푸코는 1983년 10월에 다시 버클리를 찾아 〈담론과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여섯 번에 걸친 강의를 한다. 강의의 주제는 “기원전 5세기 말부터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 발견되고, 기원후 4세기 말에서 5세기경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텍스트에서도 발견”(『담론과 진실』, 심세광, 전혜리 옮김, 동녁, 90쪽.)되는 파레시아라는 개념이었다. 어원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기’라는 뜻인 파레시아는 진실을 말하는 용기,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기 등을 의미한다. 푸코는 파레시아를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숨김 없고 꾸밈 없는 진솔한 말하기이며, 말하는 주체의 신념과 진실이 일치하는 진실-말하기이고, 위험을 무릅스고 말하는 용기있는 비판이고,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상대적으로 열등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비판을 가하는 말하기, 자유이지만 의무이기도 한 말하기, 진실 게임. “파레시아는 일종의 발언 행위이며, 그 속에서 화자는 솔직함을 통해 진실과 일정한 관계를 설정하고, 위험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정한 관계를 수립하며, 자유 및 의무를 통해 법과 일정한 관계를 수립하고, 자아비판이나 타자에 대한 비판 등 비판을 통해 타자와 일정한 관계를 수립한다.”(같은 책, 101쪽.) 푸코는 이 일반론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나아가서, 시대를 따라 내려가면서 파레시아의 의미와 용법에 변화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정치적인 권리 혹은 의무이기도 하며, 제자나 친구를 인도하는 영성 지도의 기술이기도 하고, 자기 돌봄이라는 주제와 결부되는 것이기도 하다. 푸코는 자신의 목표를 “자기 돌봄의 역사와 우리가 자기 수양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파레시아 개념을 다루”는 것, “자기 수양 내에서 진실의 형식과 역할을 분석하고, 진실 게임들을 분석하는 것”이라고, “자기 수양이 파레시아스트 게임이라는 특수한 진실 게임을 이용해 전개된 방식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요컨대 파레시아는 비판이면서 자기의 구축이고, 사유이자 동시에 실천이고 삶의 양식이다. 파레시아라는 개념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 자신을 가꾸고 갈고닦는 것, 오늘 여기의 우리를 들여다보고 문제삼음으로써 우리 자신을 변혁하는 것과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되는 정치적 실천, 사유 활동, 비판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 그 둘 다이면서 곧 비판으로서의 삶인 것이 바로 파레시아라는 것, 푸코는 바로 이 점을 말하고자 했다. 푸코는 〈담론과 진실〉의 첫 번째 강의를 마무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체화의 계보와 비판적 태도의 계보와의 교차 지점에 있는 파레시아의 분석은 우리 자신에 대한 역사적 존재론이라 불릴 수 있는 것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로서 우리는 진실을 말할 능력이 있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습관과 태도,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능력이 [···]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책, 134쪽.)

 

우리들 – 2.

1978년의 푸코의 텍스트에서 1983년과 그 이듬해까지의 푸코의 텍스트를 살펴보면서, 나는 푸코가 비판의 개념을 정립한 방식의 이동을 드러나고자 했다. 이것은 푸코 연구 ‘내적’으로는 『감시와 처벌』, 『앎의 의지』까지의 푸코와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의 푸코 사이에 있는 듯한 간극 혹은 문제 설정의 거리를 설명해준다. 즉 비판의 문제는 푸코의 두 시기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와 같다. 중요한 것은 관심 주제의 변화에 따라서 비판의 개념을 설정하는 방식이 달라졌는지, 비판의 개념을 다시 고찰함으로써 새로운 주제와 연구로 나아갔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다만 칸트의 텍스트를 매개로 하여, 통치성에 대한 거부와 저항의 자리에 있던 것이 오늘날의 우리가 아닌 다른 우리로 나아가려는 가능성과 실험으로 바뀌는 모습을 포착하는 것, 이 모습이 지식-권력의 계보학에서 주체-윤리의 계보학 — 물론 여기서 진실과 권력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실(혹은 지식), 권력(혹은 법과 의무)과 함께 주체(와 윤리)가 삼각형을 이룬다는 것이 중요하다 — 으로 넘어가는 모습과 닮아있다는 것을 포착하는 것이 바로 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푸코에게서 비판의 문제가 이동하는 궤적을 그려내는 일은 또한 그 자체로도 오늘의 우리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비판을 통치성에 대한 거부로 읽어내고 행하는 것은 여전히 때때로 유효하다. 아직 이러한 비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에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 우리가 어떤 것을 어디까지 비판하고 우리 스스로에게 어떤 것을 허용하고 어떤 것은 반대해 마땅한지에 관한 논쟁에 봉착하여 옴싹달싹할 수 없을 경우에, 우리는 푸코가 보여준 보다 탁월한 비판의 개념을 통해 소모적인 자기 학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 우리 세대가 처한 논쟁들 중에 하나는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이다. 나는 여기서 감히 페미니즘 담론에서의 한 개념과 실천을 예로 들어보고자 한다. 페미니즘 운동들 중의 하나는 흔히 ‘탈코르셋’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바로 이 ‘코르셋’이라는 말에 모든 것이 간결히 압축되어있다. 그것은 족쇄이지만, 여성들에게만 씌워지는, ‘예뻐지기 위한’ 족쇄다. 간단히 말하자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코르셋’과 같은 것이 남아있다는 비판이다. 대표적인 ‘코르셋’으로 꼽히는 것이 화장과 브레지어 등이다. 조금 더 면밀히 분석해보자면, ‘탈코르셋’이라는 실천은 두 갈래의 작용에 대한 반발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꾸밈 노동’이라는 기발한 표현이 잘 말해주듯, 여성은 사회적으로 꾸미지 않으면 비난받거나 무시받는 시선과 발언, 요컨대 권력 작용 속에 있으며, 이것이 꾸미는 행위를 사실상 강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화장하는 것이 좋아서 그것을 행한다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는 화장이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재정적으로 부담이 아니며, 자신을 자신이 원하는 여러 다른 모습으로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일 뿐이고, 심지어는 기꺼운 일, 재밌는 일일 수도 있다. 여기서 “그것은 학습된 욕망의 결과”이며 따라서 여기에도 역시 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의무와 욕망에 대한 저항이 ‘탈코르셋’ 운동의 핵심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화장이 학습된 욕망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인 경우에도, 화장하는 여성에게 ‘그것은 옳은 실천이 아니’라는 비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비난이 가해지는 것이다. 화장을 하는 행위는 자신이 화장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일 뿐 아니라 화장을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담론에 기여함으로써, 또 ‘늘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여성에 대한 대상화에 참여함으로써 다른 여성들 또한 화장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다는 주장이다. 바로 여기에서 논쟁이 촉발되었다. 화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며 화장은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화장을 하지 않고 외출하는 것은 하나의 정치적 실천이며 그 자체로 비판 작업일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화장을 하는 행위는 전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가(반페미니즘적 행위인가)? ‘반드시, 의무적으로 거부하기’로서의 ‘탈코르셋’ 실천의 문제는 여기에 유사한 논쟁 하나를 더한다. 여기에서는 ‘어디까지가 코르셋인가’가 문제가 된다. ”슬라임’이라는 젤리 형태의 장난감이 유아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이런 장남감을 갖고 노는 것은 여성이 유아적인 것으로 대상화되는 담론에 기여하므로 그런 장난감의 소비 역시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이른바 ‘탈슬라임’ 논쟁이다.
이제껏 공개적으로 표명한 적은 없지만 사적인 대화에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내놓은 바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항상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어떤 담론 바깥에 있는 사람의 최초 직관이 정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직관이란 ‘중요한 것은 화장(또는 브레지어)을 하든 말든 상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탈코르셋’이지 않은가? 구두를 신든 샌들을 신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격식을 차려야 할 자리에서 구두를 신는 것은 다른 종류의 사회적 관습과 관련되어있긴 하지만 젠더의 문제는 아니다. 더운 여름 편한 자리에 새로 산 멋진 샌들을 신고 나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며 즐거움이다. 화장이 신발과 같은 것이 되는 것,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게 아닌가? 중요한 것은 오늘날 화장이 젠더의 맥락에서 하나의 기호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동하므로 그것은 의미를 띈다. 그 의미를 사용하므로 그것은 작동한다. 화장이 더 이상 사회·문화적 기호로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젠더와 연관되지 않는 방식으로만 의미를 띄게끔 하는 것, 그런 방식으로 화장을 하는 것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고, 때에 따라서 누구나 화장을 하고 싶은 사람, 화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화장을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화장에 관한 한 ‘탈코르셋’의 목표가 아닌가? 어디까지가 ‘코르셋’인지에 대한 ‘살생부’를 작성하여 그 거부를 엄격이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코르셋’이라 불리는 것이 하등 중요하지 않게, 즉 더 이상 젠더적 맥락에서 하나의 기호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무심하기의 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 ‘탈코르셋’은 ‘반코르셋’이 아니다.
비판은 어떤 것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비판한다는 것은 비판이 그 대상으로 삼는 어떤 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다. 바로 이 단어가 칸트의 텍스트에서 아주 흥미롭고도 중요한 것이라고 푸코가 강조한 바 있는 표현이 아닌가. 물론 마땅히 반대해야 할 것에 대한 반대, 거부해 마땅한 것에 대한 거부는 때로 유용하고 유효할 뿐 아니라 어떤 경우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나는 여기서 하나를 더 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우리 자신을 오늘 우리의 삶과 오늘 우리 자신과는 다른 것으로 발명하고 재편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직접 살아내는 것으로서의 비판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바로 이것이 푸코카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적 존재론으로 불렀던 것이 아니겠는가. 비판에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탈피하는 것 — 그것을 그대로 둔 채 피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더 이상 소용 없도록, 작동하지 않도록, 기호로서 중요하지/의미있지significant 않게끔 하여 우리가 더는 그것에 제약받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 이 아니겠는가.
 

우리들 / 미셸 푸코

이를테면, 푸코는 이렇게 얘기했을 것 같다. “사회, 문화, 혹은 제도······가 우리들에게 부과했다고 혹은 투영했다고 여겨지는 의무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이른바 만들어진 것, 구성된 것 전부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해방이라는 착각으로 결국 그것들에 다시 종속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과는 상관없는 우리, 그것들이 더는 중요하지 않은, 그것들이 더는 사회·문화적 기호로서 작동하지 않는, 오늘과 다른 오늘의 우리를 상상하고 또 그것을 시험해보는 일이다. 거부하는 것은 분명히 하나의 가능하고도 유용한 실천의 방법이지만 그것이 다시 의무가 되는 일은 아마도 다시 예속되는 일이 아닐까.”
푸코는 〈자기 수양〉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다음과 같이 말하며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자기를 석방하거나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새로운 유형의, 새로운 종류의 자기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것입니다.

(〈자기 수양〉,『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123쪽.)

또한 푸코는 1982년〈주체와 권력The subject and power〉에서 (역시 칸트의 계몽에 대한 텍스트를 언급한 뒤) 다음과 같이 썼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제기되는 정치적이고 동시에 윤리적이고 또 동시에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는 개인을 국가와 그 제도들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국가 및 국가와 결부된 개인화의 유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일 겁니다. 수 세기 동안 우리에게 강제되었던 개인화의 유영을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주체성을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수양〉,『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122쪽 주석 46에서 재인용.)

(위에서 말해본 것은 하나의 예시이다. 우리 세대가 페미니즘 담론 뿐 아니라 ‘노오력’ 담론, ‘꼰대 담론’ — 이것들에 관해서는 아직 만족할 만큼 분석하지 못한 것 같다 — 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면, 그리고 우리 세대의 문제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담론들, 논쟁들, 서로 다른 집단끼리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사유의 균형을 잡는 일이라면, 우리 자신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로서, 오늘의 우리가 무엇이며 또 어떤 우리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해 묻는 이 비판의 방식이 결정적이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또한 나 자신을 끝없이 완성해나가는, 철학적 삶의 양식으로서의 파레시아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 같다.)
 

나 / 미셸 푸코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적 존재론으로서의, 실천으로서의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 감히 오늘날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에 관해 말하기, 우리 자신에 대한 자리매김의 변동, 전이의 가능성을 말하기······
일련의 글쓰기/행위/실천이 비판적이면서 스스로가 하나의 예시가 되는 방식으로 실재-사실들 속에 불온(의 진실)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려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주체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진실과 맺는 관계로서 발생하고, 바로 이 활동은 곧 ‘감히 말하기’와 같은 것, 푸코가 말하는 파레시아와 같은 것이 아닐까.
푸코는 칸트의 개몽 개념을 근대적인 비판으로 읽어내고, 그 비판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오늘날에 비추어서 명료하게 제시한다. 그러나 파레시아에 대해서는 미처 그렇게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등졌다. 오늘날 파레시아는, 예술성과 정치성의 쌍을 발명함으로써, 우리의 현재성과 현실에 진실을 꽂아 넣음으로써 주제가 진실과 관계하는 삶을 일구기,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불온-되기로 재정립될 수 있지 않을까.³
 
 
 
 


1.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박정자 옮김, 그린비, 470쪽.
2. 같은 책, 543쪽.
3. 필자의 이전 글, 〈작동하는 불온들, 서로를 읽고 연주하는 낙서들〉, 6, 7, 9절 참고.

단현
danhyun0124@naver.com

2 thoughts on “우리 자신에 대한 비판적 존재론, 파레시아, 불온-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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