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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2020년 한 해의 삼 분의 일이 거의 지났다. 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세 달이 지났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는 우리의 오늘-여기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 보여줄 것인가? 이 거대-사건이 지나간 다음, 그것은 우리의 현실에 무엇을 남겨 놓을 것인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범위에 있어서, 우리가 처한 지금-여기를 단적으로 요약하는 말로 ‘예외상태의 일상화’라는 표현보다 적확한 것이 있을까? 이 말의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그리고 아감벤이 제시한 개념의 의미에서 말이다.

아감벤이 이야기한 ‘예외상태(의 일상화)’란 법의 외부를 창출함으로써 지속되는 “통치의 패러다임”(2003)이다. 그런데 이 지면에서 나는 아감벤의 이 개념을 다음과 같이 재정의함으로써 국가 장치의 통치 전략뿐 아니라, 그러한 전략이 파편화되고 미시화되어 오늘날 사회가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특징적인 기제에 이르렀다는 사태를 사유하고자 한다. 즉 ‘예외상태의 일상화’란 특정한 가치 또는 삶의 양태,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인 유예다.

말하자면 ‘예외상태’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의 확산과 대유행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재난 상황에서 완전히 상이하고 동등한 가치들에 우선순위의 질서 체계가 부여되고 이것이 재조정되는 사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들에 순서를 부여하지 않고는 결코 윤리적,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순서들이 끊임없이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일, 그리하여 이 순서의 체계를 시공간적으로 고정하여 사회 전반에 통용시키는 일, 어떤 한 가치에 대한 다른 특정 가치의 항구적인 우위를 확정하는 일, 이것은 예외상태를 ‘상례’로 만드는 작용이다. 천재지변이든 전염병이든, 재난의 상황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국가 외에 이와 같은 경우를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는 도구를 발명해내지 못했으며, 시장의 ‘자율적’ 행위자들의 집합만으로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2차적인 폭력 사태를 방지하는 일을 이뤄낼 수 없다. 비상 상황에서의 대응과 조치들은 필요하며, 이때 어떤 가치, 어떤 삶의 가능성들은 중심부적 위치에서 밀려나 잠시 유보된다.

이 일시적 보류 자체가 문제라고 힐난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잠정적이고 일시적인 조치라고 생각했던 것의 예외성, 임시성이 점차 망각되어 그것들이 항구적인 것이 되는 일은 문제다. 조정된 가치 질서의 선포가 명확하게 종언을 고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예외적 규범이 상례로 자리잡는다면, 이는 분명히 통치가 작동되는 사태이고, 바로 이러한 사태를 가리키는 개념이 ‘예외상태의 일상화’다.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지금의 고난은 2차 대전 이후 유례 없는 위기로 여겨지고 있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합의한’ 이 사회적 예외상태의 예외적임을 망각하고, 이 예외상태의 국면이 우리의 ‘일상’에 항구적으로 스며들어 우리의 일상을 비상화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전망은 밝지 않으며, 예컨대 이미 세계의 곳곳에서, 지금껏 부단한 노력으로 퇴치해온 인종주의가 코로나-19의 유행 이후에도 다시 활개칠 거라는 징조가 솟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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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사회가 “이 시국에”라는 표현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를 깨닫고 새삼 놀라게 된다. 이것이 단지 근래 들어 계속된 지정학적, 외교적 갈등 혹은 재난의 상황에 기인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 사회가 어떠한 ‘시국’ 속에 있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새삼 깨닫게 되는 또다른 사실은, 우리가 자주 쓰는 저 표현에서 ‘시국’이라는 단어 대신 ‘전쟁통’이라는 단어를 넣어도 그다지 위화감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여러 국가의 정부들은 현재 코로나-19의 유행과 이에 대한 국가적 대응 상황을 ‘전쟁’에 빗대는 언술들을 생산해냈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전쟁터의 공간에서는, 말 그대로 적으로 규정된 모든 것의 제거와 파괴가 정당화된다. 전쟁은 인간이 인간을 (정의 혹은 불가피의 기치 아래) 죽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은 ‘후방’에 있어서는 전 국가적 동원 체제의 정당화 및 작동을 의미한다. 전쟁은 그야말로 전후방을 통틀어 예외상태의 가장 극단적인 예다. 그러므로 전쟁의 은유는 선전포고의 수사, 즉 누가 적인가를 규정하고 작전과 동원의 불가피함을 역설하는 수사다. 군사 작전과 실제 전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전쟁’이라는 단어는 곧 현재를 비정상abnormal의 상태로 진단하고 규범norm의 수정 혹은 유보를 요청하는 은유다.

그런데 내부의 적, 혹은 가시화되지 않는 적과 ‘전쟁’할 때에는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이때 전쟁의 은유는 질병의 은유, 특히 역병 혹은 암의 은유와 만난다. 그리고 내부의 적(이를테면 첩자) 없는 전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전쟁의 은유가 역병의 은유와 얼마나 강력한 친연성을 갖는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그런 만큼, 단순한 은유가 아닌 실제 전염병 발생의 재난 상황은 손쉽게 전쟁의 은유 쪽으로 전환된다. 전염병에 대한 방역 대책 및 의료적 대응 정책 수행은 ‘전쟁의 은유’라는 수사를 통해 전 국가적 동원의 체제를 정당화한다. 이러한 예외상태에서 유예되는 가치는 전쟁 상황에서와 거의 유사하다.

앞서 이야기했듯, 재난 상황이야말로 국가 장치가 특정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그럼으로써 존재 이유를 입증할 것이) 요청되는 때이다. 실제로 국가가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성공적’이었다면, 어떤 구체적인 전략이 유효했지를 사후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 사회의 어떤 요소가 효과적으로 기능했는지 역시 살펴볼 수 있다. 당연히 정부는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전략를 수행하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지만, 정부를 구성하는 관료들 자신도 의식적으로 인지하지 못한 채 동원의 손아귀에 들어온 사회문화적 요인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지면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언론을 포함한 담론의 생산 및 소비 주체들이 ‘성숙한 시민 의식’이라는 말로 뭉뚱그려버리는 그 어떤 것이다.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등) 정부 방침에 대한 협조가 잘 이뤄지고 사재기와 같은 혼란 역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은 어쩌면 그저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만, 불안을 느끼되 공황에는 이르지 않는 이 사회의 ‘비결’이 단지 ‘성숙한 시민 의식’이라는 설명은 불명료할 뿐 아니라 찜찜한 뒷맛을 남긴다. (그것이 은연중에 드러내는 국가주의적 함의 때문만이 아니다.)

‘시국’이라는 단어에 대한 익숙함, 사회적 혼란 상태에 대한 이 질긴 익숙함. 우리는 바로 여기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이 익숙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장구한 역사적 맥락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런 물음과 함께, 우리는 은유로서의 전쟁이 아닌, 실제 전쟁의 상황 전후(前後)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한국전쟁, 혹은 좀 더 넓게 잡아서, 한국전쟁을 아우른 한국의 국민국가 건설기가 한국 사회에 남긴 것은 무엇인가?

3-1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한국전쟁 전후(前後)에 걸쳐 남한의 ‘국시(國是)’의 자리에 등극한 이른바 ‘반공’이라는 프로파간다 또는 이데올로기가 그저 언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남한의 국민국가(nation-state) 건설 과정과 뗄래야 뗄 수 없이 결부되어 있는 통치 전략이었다는 점은 이미 연구자들에 의해 강조된 바 있다.

반공의 기획은 애당초 특별한 예외적 위치에서 발동하는 주권적 권력에 의해 주조된, 그에 의한 통치 방식이었다. 즉 빨갱이를 배제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을 통해 주권권력이 작동했기 때문에, 통치 행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계속 이 상황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다시 말해 누구든 빨갱이로 지목되어 추방될 수 있는 유동적인 상황을 조성하는 일 자체가 통치행위일 수 있었던 것이다. 반공이라는 추방령이 통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예외상태를 지속시켰던 가운데, 추방대상에 대한 자의적 처분은 국가(민족)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신형기 2013, 430

한국 사회에서 반공, 그리고 이와 보조를 맞춰 가는 체제 경쟁 속 경제 개발(이른바 ‘조국 근대화’의 사명)은 거의 ‘예외상태의 일상화’의 다른 이름이다. 이 개념을 우리가 글의 처음 부분에서 재정의한 바에 따르자면, 반공은 달리 말해 ‘공산주의적’인 것과 연관되거나 조금이라도 유사한 모든 가치의 항구적 유예 상태다. 경제 개발과 ‘조국 근대화’의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해하거나 그와 무관한 가치들은 ‘가치들의 순위표’ 상에서 무한정 밀려난다. 따라서, 예컨대 노동자의 생존은 보장되어야 하겠지만 노동자의 권리나 존엄은 없다. 여성의 권리 증진은 아직 시급한 과제가 아니며,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은 차후에나 다룰 일이다. 도래하지 않는 차후를 저편에 둔 채, 국가는 국민들로 하여금 오늘만을 성실히 살아낼 것을 요구한다.

일상화된 예외상태로서의 반공이라는 통치 전략을 기획한 주체는 국가 장치였고, 실제로 그러한 통치의 방식은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를 배제하면서 ‘국민(nation)’의 틀을 주조해내었다. 그런데 법의 바깥을 창출해내는 주권권력의 작용은 결과적으로 개개인이 공유하는 ‘무의식’이라고 할 만한 영역에 스며든다. 다시 말하면 일상화된 예외상태의 전략은 국가 혹은 법이라는 권력 장치의 작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개인의 심리의 영역 혹은 문화적 영역으로 세밀하게 침투하여 이윽고 스스로 재생산되고 지속되기에 이른다. 반공을 아감벤적 맥락의 예외상태로서 사유한 연구자들 역시 이러한 점을 이미 지적하고 있다.

그것[반공]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그 작용을 차단, 금압하려는 데서 사상 전반의 통제와 언어적 통제, 나아가 생활의 무의식의 통제로 확대되었다. 공산주의가 대중을 현혹한다는 생각, 누구든 공산주의에 넘어가면 우리가 아닌 타자가 되고 만다는 우려, 그러한 변신을 돌이킬 수 없고 개전(改悛)이 불가능한 치명적인 감염으로 여기는 관점은 가히 편집적인 것이다. 이 편집증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에 앞서 빨갱이로 간주(지목)되는 데 대한 공포를 증폭시켰다. 즉 빨갱이로 보일 수 있는 어떤 가능성도 사전에 삭제해야 하는 편집증-공포야말로 국민을 주조해낸 틀이었다. 그러나 빨갱이라는 기표와 그 기의의 관계는 얼마든지 자의적이고 어긋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편집증-공포는 허공에 뜬 불안감을 또한 불식할 수 없었다.

신형기 2013, 429-430

북한 정권 및 인민군과의 전쟁 이후 남한 내에서 벌어진 공산주의와의 전쟁은 전국민적 (자기 검열을 동반하는) 사상 무장 및 동원을 통해 수행되었으며, 당대에 생산된 여러 담론들에 대한 연구들이 잘 보여주듯이, 이는 전염병의 은유를 통해 반복 재생되는 ‘이념적 위생관념’ — 이 표현은 본인이 창안해 붙인 것인데, 말하자면 이 치명적 감염병의 치료란 불가능하며 오직 철저한 예방만이 가능하다 — 에 대한 강조의 형태를 띤다. 이런 점에서, 반공은 정확히 전쟁이라는 말과 역병이라는 말 사이에 있다.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된 비상의 일상화는 일상의 비상화와 구별되지 않는다. 해방 후 한국(남한)의 근대 경험에서, 반공은 점차 일상화된 통제를 넘어 늘 긴급한 것을 먼저 좇아야 하는 일상이며, 문화가 된다.

3-2

예외상태의 일상화, 즉 가치의 우선순위의 유동성이 거의 사라지고 응고되어 이윽고 그러한 고정성 자체를 (의식적 차원에서는) 망각하기에 이른 상태에 붙여진 이름이 반공이라면, 나는 그 반공의 뒷면과도 같은 또 하나의 다른 이름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애도의 부재 혹은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이다. 말하자면 이 무능력은 개인의 무지, 무능 혹은 결여의 상태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종식되지 않고 다만 잠시 멈춘 전쟁 상태’라는 비상상황 속에서 애도 작업을 끝없이 유보하는 사회적(국가적) 명령이다. ‘타자의 얼굴’은 망각되어야 하며, ‘사회는 보호되어야 한다’.

이러한 애도의 유예는 특히,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거나 직간접적으로 여성을 살해하고서도 그 희생자들을 애도하지 못하는 남성 주체의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으로서 드러나며, 이때 남성 주체는 국가와 동일시되는 그러한 남성 자아다.

한국전쟁에 대해 다룬 첫 본격적인 장편소설로 여겨지는, 황순원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이러한 사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소설에서 세 남성 주인공은 하나같이 자신과 관계를 가진 여성을 죽인다(직접 살해하거나 혹은 죽음으로 내몬다). 이 소설은 전쟁이 남긴 ‘상처’를 이들 주인공을 통해서 보여주려는 듯하지만, ‘상처’ 받은 남성 자아의 불안정한 모습은 오직 여성에 대한 강간이나 살해라는 폭력을 통해 재현된다. 지독하게도 남성중심적인 이 소설에서, 남성 자아는 냉소적이고 방어적이며 (자기 혐오와 종종 구분되지 않는) 자기 연민에, 또는 여성의 성을 구매하거나 착취하는 데 기대어 산다.

주목해야할 점은, 이 소설의 서사가 남성 자아의 무능력과 폭력성을 싸잡아 전쟁 및 전후라는 시대의 비극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가령 자살하기 전 동호는 이렇게 말한다.

대체 우린 피해잘까 가해잘까? (중략) 내가 보기엔 말야, 이번 동란에 나왔던 젊은이들은 죄다 피해자밖에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건 말야.

황순원 2013, 123-124

한참 시간이 흘러, 현태는 동호의 이 말을 떠올리며 “정말 그럴까, 난 가해자도 될 수 있다구 보는데.”(황순원 2013, 202)하고 중얼거리듯 덧붙인다. 그러나 현태는 가해를 반성하지도, 가해의 반복을 멈추지도 못한다. 소설은 결국 강간으로 인해 현태의 아이를 밴 숙이의 입으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번 동란에 젊은 사람치구 어느 모로나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현태씨두 그 중의 한 사람이라구 봅니다. 그리고 저두 또 그 중의 한 사람인지 모르구요.

황순원 2013, 242-243

이 지점에서 전쟁 상황에서의 가해와 전쟁 이후의 범죄가 구분되지 않고 섞이며, 젠더 간의 폭력 역시 은폐된다. 시대가 남긴 ‘상처’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똑같은 피해자의 위치에 놓인다. 소설은 특정한 위계 구조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가해자임이 분명한 자들(남성들)을 시대의 ‘피해자’로 만들고 주인공으로 세우며 전쟁이 아니라 남성에 의해 살해된 삶들을 무대 뒤로 황급히 치워버린다.

그런데 서술자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대목들은 더 경악할 만하다.

죽은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가는 동안 모여 선 전우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어리어졌다. 그러나 그 그늘 안쪽에는 역시 지금 자기는 살아있다는 희열의 빛이 번져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누가 그걸 그르다고 할 수 있으랴. 그저 서로가 다른 사람의 눈에 그것이 띄지 않게 하면 되는 것이다.

황순원 2013, 39-40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에 대해 어두운 그늘을 드러내고 그 밑에 번지는 자기네들의 삶에 대한 희열을 삼가 숨긴다는 것은 하나의 인정에서 오는 예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어낸 예의니만큼 언제고 산 사람들에 의해 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황순원 2013, 49

“누가 그걸 그르다고 할 수 있으랴” — 이렇게 말하는 자(주체)는, 누구인가? 삼인칭의 서술은 이 문장에 이르러서는 결코 등장 인물의 내면 생각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소설의 세계에 무심코 불쑥 개입해버린 이 목소리의 주인은, 전쟁이 가져온 죽음에서 애도가 아닌 생존의 희열을 발견하고 정당화한다. 이 목소리는 11번째 절을 시작하는 대목에서, ‘상처’라는 말을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상처의 의미로 쓰며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서로 어떤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서는 무릇 인간관계란 성립되지부터 않는 성싶다. (중략) 그저 우리가 이런 상처 속에서도 그냥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그것들을 망각하기에 애쓰고 또한 거기에 익숙해진 때문인 것이다.

황순원 2013, 162-163

이제껏 전쟁이 남겨놓은 상처를 의미했던 ‘상처’가, 사람이 사람에게(더 정확히는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폭력의 상처와 절묘하게 겹쳐진다. 즉 이 소설에서는 자신의 손으로 저지른 폭력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며 그것을 곱씹어 생각해보는 인물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서술자가 나서서 망각의 기제를 옹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이중의 망각이 작동한다. 남성 자아 — 그리고 이들을 대변하는, 혹은 이들과 동일시되는 국가 장치 — 는 그들을 ‘생존자’로, 즉 ‘살아남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망자들,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잊으며,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취하다가 죽여버린 여성들을 잊는다. 남성 주체-국가 장치는 여성을 보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살해된 여성(여기에는 ‘진취적’이고 ‘의욕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남성 역시 기입된다)을 애도하는 일을 유예한다.

서술자의 판단이 불쑥 끼어드는 바로 그 문장, “누가 그걸 그르다고 할 수 있으랴”는 말은 우리가 질리도록 익히 들어온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과 거의 겹친다. 위로의 말로 가장해 있는 이 격언, 이 명령은 단순한 관용구가 아니라 어떤 것을 정당화하고 어떤 것을 배제할 만큼의 힘을 지닌 담론으로 작동해왔다. 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경구 또는 담론은 단지 상투적인 위로의 표현 이상의 특권적인 지위를 누려왔으며, 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늘 수행해왔다.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전쟁 상태라는 데에, 체제 경쟁의 시대이며 경제 성장이 제일 목표라는 데에 기반을 둔 예외상태의 일상화는 곧 반공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동시에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이라는 이름을 가진다. 이 두 얼굴의 일상화된 예외상태는 점차 통치 전략이라는 자신의 기원을 넘어, 사회 전반에 만연한, 생활-생존의 원리로서 작동하게 된다.

4

오래도록 지속된 비상의 일상화는 일상의 비상화와 구별되지 않는다. 국가 장치의 통치 전략인 예외상태의 일상화는 어떤 지점에 이르러, 그것을 재생산하고 발휘하는 단일한 주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뿔뿔이 퍼져 잔존한다. 그 잔존한 것을 일상의 예외상태화라고 부르자. 이는 더 이상 통치자가 피통치자를 다루는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양태를 구성하는 방식이 되었다. 나는 오래도록 한국 사회에서 유독 삶의 양태, 방식, 가능성의 다양성이 극히 제한적인 이유를 궁금해했다. 이것은 어쩌면 하나의 가능한 대답이다. 어떤 가치들이 유예될 때, 우리는 보다 손쉽게 모범답안을 얻는다.

제도적으로 민주주의를 달성한 국가.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반공이 — 이데올로기 혹은 프로파간다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은유로서, 서사로서, 문화적인 것으로서 — 작동하는 국가. 더 이상 반공 자체는 (일부 극우 세력이 계속해서 되살려 이용하긴 하지만) 국가가 전면적이고 명시적인 방법으로 재생산하는 전략은 아니다. 그러나 반공 자체가 하나의 은유가 되거나 적어도 그러한 전략에 대한 은유 혹은 서사처럼 작동한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 특유의 ‘평화로운 전시 체제’는, 이제는 적어도 상식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옹호하지 않는 프로파간다이자 통치 전략이 남긴 흔적과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이제 반공은 그저 이데올로기나 프로파간다, 정치적 전략 또는 정치적 무지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그 이름이 지워진 후에도 잘게 흩어지고 퍼져서 잔존할 문화, 혹은 삶의 양식의 이름이다. 일상화된 반공을 넘어, 반공화된 — 가치 질서가 응고된 — 일상.

모든 예외상태의 선포가 폭력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재난의 상황에서 우리는 이 눈앞의 재난이 전혀 없다는 듯이 행동할 수는 없다. 예컨대 국가의 작동이 아니라면 재난에 특히 취약한 계층을 보호할 사회적 도구가 없다. 실로 두려운 것, 우리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은 예외상태의 종식이 명확하게 선포되지 않는 상태, 혹은 사회가 예외상태화된 일상을 학습하고 내면화한 상태다. 반공이라는 일상화된 예외상태는 글자 그대로 일상화되었을 뿐, 예외상태의 종료가 선언된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그것이 만들어낸 가치의 우선순위표는 (그것이 주조해낸 ‘국민’들) 개개인이 삶을 구성하는 방식에 힘을 발휘했으며, 늘 그 속에 비상을 포함한 것으로서의 일상 혹은 생활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상은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의 삶에 동반되는, 늘 쫓기고 있다는 이 느낌, 늘 긴장하고 있다는 이 느낌에 관한 것 전부를 다 짚어내는 계보학적 분석은 아직 아닐 것이다. 이 계보학이 완성되려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시험이라는 구조가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마찬가지로 어떻게 단지 사람을 뽑는 제도로서뿐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사회문화적 방식으로까지 세밀하게 쪼개지고 흡수되었는지를) 고찰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5

생-정치bio-politique에 관한 이론들(대표적으로는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후기 강의들)은 국가가 규율권력을 통해 통치하는 단계 이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전략을 통해 권력 효과를 발휘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권력은, 말하자면 각각의 고유하고 개별적인 삶이 아니라 인구를, 집단적인 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권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테제를, 혹은 그러한 테제를 말하는 자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옳은 명제가 아니며, 무엇보다 그 명제를 말하는 자가 ‘큰 숫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작은 숫자’들을 적절히 포기하는 식으로 전체의 안전을 꾀하는 전략을 취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안전’이란 정치적 함의 또는 의도를 지닌 말이다.

한국이 코로나-19의 대유행 국면에서 방역 및 억제 등의 대응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이유에 관한 분석은 다각도로 가능할 것이다. 의료 기술 및 의료보험 제도를 포함한 의료 인프라가 뛰어나다든가, 확산 초기에 국가 간, 혹 국가 내 이동을 전면적으로 봉쇄하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신속하게 역학 조사에 들어갔다든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검사 키트를 대량으로 생산했으며 엄청나게 많은 검사를 시행했다든가 하는 모든 요소들이 결과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주목을 받았으며 또한 서구의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면서 논란을 불러왔던 것은, 국가가 코로나-19 확진자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바탕으로 동선 및 접촉자를 추적하고 이를 공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추적에 동원되는 자원 및 제도는 본래 추적의 대상이 범죄 용의자일 경우에만 허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방식은 분명히 서로 상충되는 가치 — 감시되지 않을 권리 및 전시되지 않을 권리 대 집단적 안전 — 사이에서 특정 가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가치의 질서 체계가 적용되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더 정확히 말해 그러한 질서를 적용하는 예외상태에 돌입했음을 듣기도 전에, 이미 예외상태는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방식이 한국 내에서는 거의 논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건대, 나는 이 방법이 옳지 않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선택지들 중 거의 유일하거나 가장 뛰어난 것이었을 터이다. 그리고 현시점에서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국가의 이런 대응 방법으로 인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말 그대로 예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가치 질서에 대해 모두의 합의가 있었다는 듯이, 그 어떤 진통도 없이 매끄럽게 이 추적의 방식이 시작되고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일상이 이미 예외적인 것이었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또한 의료인 등 특정 직업군의 노동 환경 및 권리에 관한 상대적인 무관심 역시, 체제 경쟁과 경제 개발의 기치 아래 반복된 특정 가치의 유예 상황이 거의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집에 못 가고 며칠 밤을 새우며 주어진 일에 몰두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디어에 의해, 의료진들은 최전선에 나가 싸우는 병력들로 호명된다. 사람들은 그들을 걱정하고, 힘내라는 응원의 말을 전하지만 그들의 노동이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있는지를 묻지는 않는다. 불가피한 과로라 할지라도 그것이 불가피한지가 의심되지 않은 채 이미 합의되어 있었다는 것. 이것 역시 마찬가지의 이유로 놀라운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적인 것, 분명히 오늘-여기에서 유예된 것은 바로 애도다. 사망은 놀랍거나 슬픈 사건이 아니라 숫자가 된다. 그 죽음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인 이유는 그것이 한 삶이 소멸하고 그 주변의 모든 관계 역시 끝나버렸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 아니라 전체 사망자 통계에 1만큼의 덧셈을 가했기 때문이다. 감염으로 인해 결국 더 이상 삶도 생명도 누릴 수 없게 된 몸뚱어리는 고인이 세상에 남겨놓은 마지막 물질적 흔적, 화장되어 애도될 대상이 아니라 처치해야 할 대상이고 소각하여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애도 작업이란 언제나 유예되고 끝내 어물쩍 지나쳐 온 행위다.

도대체가 그렇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일상이 비상이 된 삶은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 말하고, 그 말은 비상이 된 일상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계속해서 삶이란 것이 살아진다/사라진다. 우리가 비상화, 예외상태화해버린 일상의 어떤 영역들을 재건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재난의 시기에서 예외상태가 일상화된 나머지 결국 예외성이 잘게 흩어져 잔존한 채 공동의 무의식에 흡수되어 망각되어버리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것. 2020년의 봄에, 내가 기도하는 것은 다만 이런 것들이다.


참고문헌

신형기. 2013. 「해방직후의 반공이야기와 대중」, 『상허학보』 37: 397-436.

황순원. 2013. 『나무들 비탈에 서다』. 서울: 문학사상.

단현
danhyun0124@naver.com

5 thoughts on “한국 사회에서 ‘예외상태의 일상화 / 일상의 예외상태화’의 계보학

  1. 잘 읽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추적에 동원되는 자원 및 제도는 본래 추적의 대상이 범죄 용의자일 경우에만 허용되는 것이다’라는 언급은 다소 오도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필자께서는 범죄자에 대한 감시와 달리 비범죄자에 대한 감시와 관찰된 사실의 부분적 공개가 합의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범죄자에 대한 감시 및 그에 관한 사실의 부분적 공개라는 것 자체가 (명시적 헌법으로든 정치적 원리로든) 안전 보장의 목적으로부터 정당화된다는 점에서, 확진자의 카드 내역 추적 및 동선 공개는 “범죄자에게만 정당화되던 것이 합의 없이 확진자에게도 정당화된”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정당화하고 있었지만, “안전 보장을 위협하는 병원균”의 부재로 인해 현실적 사례가 없던 것이, 병원균의 확산으로 인해 현실화됨에 따라 일어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범죄자의 그것과 구분되는 의미에서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범죄자 0명인 사회에서 어느날 범죄자가 발생했고, 그를 구속한 뒤 부분적으로 그의 정보를 공개했다고 해서 그것이 단적으로 “예외적인”, 즉 그 원칙의 적용이 통상적이지 않은 그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싶네요.

    1. (동선 공개나 카드 추적과 별개로 초기의 대응이었던 “신상 정보 공개” 등은 물론 정당화되기 어려운 임의적 조치였겠지만요.)

    2. 제가 짚어두고자 했던 것은, 그러한 조치는 국가가 합의 없이 자의적으로 국가 권력을 남용한 것이라는 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조치가 이미 합의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 없었다는 사태입니다. 이 사례를 통해 제가 얘기하고자 했던 바 역시, 이러한 조치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임의적인 행정이었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전 보장’이라는 가치에 굉장한 우선순위, 중요성, 긴급함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합의’가 통용되어 있다는 점(즉 본격적인 사례 없이도 조치 방안이 정당화되어있다는 점)이 놀랍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점에서 ‘반공’은 주권 권력의 통치 전략으로서의 (일상적) 예외상태를 넘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문화가 되었다는 것이 제 글의 요지니까요.

      1. 그 합의가 이미 제도적으로 선결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감염병예방법 및 헌법이 이러한 상황에서의 시민 통제와 감염자 정보 공개를 허가하고 있다는 점은, 이 상황이 ‘일상화되어있는 반공’같은 것과 이어지기보다는 단순히 제대로 된 국가가 이후의 재난 사태를 대비해둔 것이 상황을 만나 작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필자께서 글 전반부에 논하시듯 이 사태를 전쟁통같이, 그에 준하는 비상사태로 보는 것에는, 전쟁에 관한 우리의 민족적 의식이 있을 수도 있겠죠. 다만 저는 원댓글에서 지적했듯, 감염자에 대한 동선 공개 등의 행정적 처분이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는 식의 서술이 오도되어 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2. 즉, 제가 원댓글에서 인용한 저 문장은 논지와 무관한 사례를 언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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