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글을 쓰게 하는 것일까?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내쳐도 글쓰기만은 버릴 수 없다면, 결국 다시 쓴다는 것으로 돌아온다면,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충동/강제하는 것일까? 글쓰기는 무엇을 향해 있을까? 아니, 애초에 쓴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하나의 완결된 문학작품, “순수한 문학”, “완성도 높은, 잘 짜여진 소설”이라는 찬사가 우리의 시대에서 과연 소용있는 것일까?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글쓰기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아주 오랜만에 다시 시작할 마음을 먹었다. 지금, 여기에서, 다시 글쓰기를 가동하기. 그 다짐을 하면서 글쓰기가 처음으로 들여다 본 것은 다름 아닌 쓴다는 것 자신이었다. 내가 이 간단한 서두 뒤에 드러낼 글들은 지금의 내가 쓴 글이 아니다. 이 글들은 하나의 주제를 바탕으로 구성되고 작성된 것이 아니다.  이 단편들은 내가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노트에 적어두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완전히 다른 시간에 발생했으며 공통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지금의 내가 하는 작업이란, 단지 이것들을 하나의 공간 속에 재편하고 배열하고 인접시키는 것이다. (2018.03.25.)
삶이 내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그것은 때로는 사치스러운 보석 같은 것이었으며 또 버거운 짐 같은 것이었다. 삶의 충분함이 아니라 과분함. 흘러넘친 삶은 내가 주워담을 겨를도 없이 어디로 갔을까? (2018.02.18.)
내가 변혁이라고 말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다른 아닌 지금 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꿈꾸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나를 사로잡은 문제들은 폭력, 욕망, 권력……과 같은 것들이었으며, 그것은 억압된 삶, 상투적인 삶, 요컨대 생존 자체에 초점 맞춰진, 살아남는 삶, 살아지는 삶을 증오하고 거부하기 위해서였다. (2018.03.13.)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 문제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늘 이것이었다……. 그런 만큼 이는 단지 우리의 시대를 이해하려는 — 분석하고 이론화하려는 — 노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내려는 노력이다. (2018.01.19.)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세상과 적당히 어울리고 적당히 불화할 것이며, 때로는 구슬리고 설득할 것이고, 그러나 내 고집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지치면 그만둘 것이고, 만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다시 시작할 것이다. (2018.02.10.)
그러므로 우리가 향할 곳은 정의를 위한 헌신이 아니라 (모순의 두 항을 지탱하고 직시하는) 정직성이다. 그것은 비겁함을 거부하는 것, 일단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권력에 영합하고 편승하고 변명하는 일을 거부하는 것이면서, 자신은 불의와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서, 자신을 불의로부터 멀리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불의의 옆에서 어깨를 부딪치는 것, 다시 말해 정의를 신으로 추앙하여 숭배하지도 불의를 상종 못할 악마로 파문(破門)하여 모멸하지도 않으며 불의의 곁에서 그것보다 오래 버티고, 하나의 불의가 퇴장하기 전까지 멈추지 말고 달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실천에 앞서는, 사유이며 곧 행위인, 하나의 태도이다. (2018.02.10.)
내게 남겨진, 근본적인 것, 내 모든 여정의 출발점에 있는 것이 일종의 윤리적 요구였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저버릴 수 없는, 원초적인 신탁 같은 것. 도저히 배신할 수 없는 것 — 그것은 고정된 모범이 아니라 하나의 일관된 요구다. 그러므로 내게 산다는 것과 쓴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요구에 대한 응답들이다. (2018.03.24.)
오늘은 오늘의 글을 쓴다. 내일은 내일의 글을 쓴다. 쓸 수 있는 만큼만 쓴다. (2017.12.02.)
겸손하게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텍스트는 내가 쓰는 것, 내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것일 수도 있었던 삶, 내가 내 삶을 들여다보려는 고통과 모순에 의해 튕겨져 나온 부산물, 내 삶과 닮은, 잃어버린 쌍둥이 형제이자, 기형으로, 겨우 꼴을 갖춘 모습으로 발견된 그의 시체, 흔적, 무늬다. 그것은 나의 탐구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맞닥뜨리는 것이다. 무엇인가가 도래하고, 나는 그 앞에 멈춰 선다. 나는, ‘나’로서는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로 하여금 내가 아닐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내가 맞딱드린 그것에 형체를 부여하기 위한 지난한 노력에 의해서만 나는 겨우 ‘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창조’할 수 없다. 내가 하는 것은 짓는 일이다. 그러므로 ‘완성’이라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다. 오직 텍스트만이 유적처럼 남는다. (2017.10.30.)

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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