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갯소리로 시작해야겠다.
“셋이라는 건, 결국 모두가 혼자라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 같아. … 셋이 되어 나머지 둘이 이미 잠들어 있는 걸 보면서 정말로, 정말로 혼자라는 걸 깨달아야 사람은 완전해져.”
—윤이형, “셋을 위한 왈츠”
둘에게 선수를 뺏겨 외롭다는 이야기다. ‘여정’의 글 하나로 충분한 시작이라 생각했는데 ‘단현’이 균형을 깨버렸다. 길고 멋진 말이 다 나와버려 걱정이다. 지적 허영을 먹고 사는 사람 중 하나라 이런 모양새는 좀 아프다.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인 탓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에 관한 이야기다. 어릴 적의 나는 단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숨을 쉬고 많은 다짐을 해야 했다. 말을 한다는 건 내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해내야만 할 일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입안에 말더듬이의 땅이 남아있다. 항상 제대로 말하고 싶다는 생각. 필요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아, 아, 아, 안녕, 이 아니라, 깔끔하게 안녕, 말하고 싶다는 생각.
그런 정갈하고 유효한 말들을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많이 말하지 않을 것 같다. (아마 여정과 단현의 말이면 충분하리라 믿는다) 나는 언어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기 전에 언어에 닿는 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 시간이 꽤 걸릴 일이다.  아직 이 공간(‘지평’이라는 공동체)에 도달하지 못한 셈. 내 지평은 아직 능선 너머에 있다. 능선을 넘을 말들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즐겁다. 즐겁게 말하고 쓸 것이다. 아직 말이 되지 못한 말들을 공들여 더듬는 일이 좋다. 아직 지평에 다다르지 못한 이의 재미라 하겠다. 변명건대 나는 국경 없이 유목 중이다. 입 안에 수많은 말들을 키우고 있다. 나는 이 말들이 어디로 달려갈지 몰라 망설이는 중이다. 그래서 지평선이 아니라 말들의 발굽을 사유하고 싶다. 아직 세계의 끝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한 번에 한 마리씩, 조심조심 말들을 풀어놓고 발자국을 따라다닐 것이다. 어지러운 곡선을 더듬을 것이다. 그 날뛰는 힘을 정갈하게 다시 그릴 수 있을 때까지 더듬을 것이다.
말장난이지만, 이것이 나의 지평인 셈이다. 넓히지 않고 미룰 것이다. 그어두지 않고 좇을 것이다. 능선 다음이 끝없이 능선이어도 좋고 안팎을 확정할 수 없어도 좋다. 끝을 긋지 않아도 끝에 닿지 않아도 끝을 말할 수 있다 믿는다. 나는 좀 더 말을 더듬을 것이다. 충분히 유목하려 한다.
지평을 그리는 나라는 둘이면 충분하다 치고, 말더듬이의 땅에 남겠다는 이야기. 둘을 남겨두고 ‘정말로 혼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사람은 완전’해진다는데, 그 깨달음은 내 독차지라는 치사한 이야기.

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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