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1965년, 베트남에 한국군이 파병된다.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것은 미국의 세계 정책에 대한 협력, 동조(즉 공산 세력으로부터 자유 세계를 지키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였다. 또한 한국은 이를 통해 미국의 물적, 기술적 원조를 이끌어내고 베트남에 한국 기업들이 진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른바 ‘전쟁 특수’라는 경제적 이익을 도모했다. 나 역시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전쟁을 한국의 ‘원정’으로 묘사하는 담론들, 파병된 장병의 남성미 예찬과 베트남 여성에 대한 공공연한 ‘품평’의 담론들은 베트남이 한국에게 단지 전장일 뿐 아니라 식민지로 여겨진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이러한 (유사) 제국-식민지적 관계는 나로 하여금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본격화된 이른바 “베트남 국제결혼”을 떠올리게 했다. 베트남 여성의 이주결혼[1]은 이러한 “국제결혼”을 중개하는 업체들이 생겨남에 따라 산업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산업의 구조와 영업 방식, 업체들과 고객들이 생산하는 담론들을 고찰해보건대, 여기에는 분명히 베트남 여성을 식민화하는 제국-식민지적 권력 관계가 작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을 단지 한국이 베트남을 식민화한다고 뭉뚱그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산업화된 이주결혼은 곧 한국의 (‘내부 식민지’라 할 수도 있을) 농촌 및 도시 주변부의 노동자 (하위 계급) 남성에게, 국적-인종에 따른 위계 관계에서 하위에 있는 여성을 대량으로 공급하여 제공하는 일련의 체계이다. 이들 여성은 ‘매칭’의 단계에서부터 이미 손쉽게 성적 대상이 되며,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해야 하는 역할을 떠맡고 남편와 시부모를 봉양하는 가사 노동과 남편의 생업을 돕는 무임금 노동의 의무까지 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젠더적 권력 관계가 국가의 테두리를 넘어 확대 재생산된다. 이는 이주결혼의 산업화 구조와, 너무도 자주 널리 포착되는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억압과 노동 착취를 볼 때 분명해 보인다. 베트남 여성이 한국의 하위 계급 남성의 하위에 편입되어 식민화된다는 해석은, 민간/시장의 영역에서, 다시 말해 국가를 건너 다니는 자본의 운동에 의해 이주결혼이 산업화되고 대량생산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그런데 이는 이 불합리한 구조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다시 말해 어째서 결혼이주여성이 이러한 억압과 차별,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지, 왜 이들이 이혼하거나 출신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거의 불가능한지를 설명해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 그들은 식민화의 권력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실패하는가? 왜 어떤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불행을 알면서도 불행 속에 놓여 있는가? 이것은 결혼이주여성이 처해 있는 곳에서, 현장과 가까운 지점에서 그들의 직간접적인 목소리를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위에서 간략히 말한 바와 같이, 결혼이주여성의 경우가 제국-식민지적 권력이 계급과 인종, 젠더라는 사회적 차이-기호를 타고 사슬처럼 뻗어 나가는 한 사례라고 하는 설명 자체는 아마도 사실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가의 역할은 전혀 없고 모든 일을 자본이 해내고 있는 것 같은 착시가 작용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자본은 국가 장치의 도움 없이 베트남 여성(혹은 다른 국적의 여성)을 식민화하는가? 식민화는 단지 국가에 의한 물리적 통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또한 오로지 경제의 영역, 자본의 운동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식민지(를 개발하는 자본의 작동)와 민족국가nation-state(가 발휘하는 통치의 전략)는 서로 결부되어 있는 항이며, 아마도 이 둘 모두를 고려할 때에만 우리는 근대를 이해하는 데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왜 결혼이주여성이 억압적 위치에 계속해서 놓여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이들 여성의 구술 자료와 이들의 인권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해온 이들의 저술 등을 살펴보았을 때 명확하게 드러난 사실은, 정부의 사법적 행정적 관리 및 규제가 이들에게 사실상 난민의 준하는 취약한 지위만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오로지 한국 국적의 배우자에 의한 ‘신원보증’에 의해서만 한국에 정당하게 체류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법적 행정적 배제는 사회문화적 배제와 얽혀 지탱된다. 이것이 단지 ‘보호하지 않음’이라는 수동적 배제가 아니라 (민족국가에 의한) 통치의 한 방식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주로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이 어떻게 식민적 상태로서 (배제적으로) 포섭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시작한 탐구는, 그러한 포섭의 작동이 어떻게 이들을 난민적 상태로서 (포섭적으로) 배제하는 작동과 맞물려 서로가 서로에게 기여하지를 드러내는 데 이르렀다. 요컨대 나는 본고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이 어떻게 식민과 난민 사이에, 포섭과 배제가 서로 교차하는 위치에 놓임으로써 억압되고 통치받는지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먼저 이주결혼 중개업체들과 그 고객들이 만나는 지점에서 생산되는 담론을 살펴보고, 이어서 결혼이주여성의 구술 자료와 이들의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해온 활동가(변호사)에 의해 쓰인 글을 살펴보려고 한다.

하위 계급 남성의 하위에 편입된 식민지로서의 결혼이주여성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 이주결혼을 중개하는 업체들이 등장함에 따라 이뤄진 이주결혼의 체계화, 산업화는 한국 내의 (상위계급 남성에 대해 식민지적 위치에 있는) 하위계급 남성이 가부장적 가족 구조의 형태로 여성을 식민화하는 데 실패하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두되었다. 이주결혼 중개업(“국제결혼 중개업”)은 국가의 정책적 장려[2]를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했다. 지방자치단체에 따라서는 성혼 시 인당 수백만원의 지원금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이주결혼은 명백하게,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와 한국 국적자의 ‘국제’ 결혼(또는 사실혼)과는 다른 것이었다. 결혼을 목적으로 한 이주, 또는 더 정확히 얘기해서, 결혼을 통한 가족구조로의 편입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이주 자체보다도 문제적인 것은 이주하는 쪽이 절대적으로 (외국인)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주결혼 중개 업체들이 제공하는 결혼 ‘서비스’의 유일한 형태는 외국인 여성이 한국으로 이주하여 한국 국적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비스 비용 일체를 한국인 남성 쪽에서 지불하게 되어있다.) 이주결혼 중개업체의 고객인 남성이 원하고 요구하는 것, 업체들이 광고하고 약속하는 내용들을 살펴볼 때, 이러한 ‘서비스’ 사업은 그야말로 한국의 농촌 및 도시 주변부의 남성에게 ‘원할 때 섹스할 수 있으며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편과 시부모를 봉양하며 남편의 생업을 도울’ 여성을 체계적으로, 대량으로 공급하는 장치임에 틀림없다. 자본을 통해, 국가 간 경제력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환상과 국적-인종의 위계를 통해 여성을 포섭하여 성적 대상인 동시에 저평가된 노동력으로 삼는 것은 외국인 여성에 대한 식민화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주결혼 중개업체들에 의해 특히 중점적으로 개발된 대상은 베트남 여성이었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그렇다.[3]

이주결혼 중개업체들이 ‘매칭’을 제공하고 맞선을 주선하는 방식부터가 상당히 여성을 대상화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중개업체의 사이트에는 고유명사가 삭제되고 번호만 달린 채 여성들의 사진이 줄지어 올라와 있다. 베트남 등 현지에 가서 맞선을 진행하는 경우에도, 한국 남성에게 이삼십 명의 여성을 보여주고 남성에게 고르게 하는 이른바 ‘집단 맞선’ 방식이 적지 않다. 이러한 물리적 배치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이다(여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고 남성이 ‘초이스’하는 구도는 성매매에서의 물리적 배치와 다르지 않다). 2012년부터 ‘결혼중개업 관리법’이 개정되어 이러한 방식의 맞선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여전히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희망자들이 만나는 방식에서부터 작동하고 있는 위계의 불평등은 중개업체를 통한 이주결혼이 다분히 매매혼의 성격이 짙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러한 중개업체들이 생산하는 홍보의 담론을 주목해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뚱뚱한 여자는 처음부터 취급하지 않는다. 피부도 검은 여자는 안 데려온다. 한국 사람만큼 희고,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온 아가씨만 보여준다”[4]는 발화는 이주결혼 대상자 여성이 철저하게 남성에 의한 성적 대상이자 상품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베트남을 ‘전문’으로 하는) 중개업체의 경우, “아이를 빨리 갖겠다는 여성과 결혼하라, 맞선 후 첫날밤을 거부하는 여성과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 호적부가 새로 발급된 여성은 재혼일 수 있으니 피하라, 미혼증(결혼하지 않았다는 증명서)을 즉시 발급받지 못하는 신부는 피하라, 남자관계가 없는 20대 초반 여성을 택하라. 20대 후반만 돼도 하자가 있을 수 있다”[5]와 같은 이야기를 고객들을 위한 ‘팁’으로 제시한다. 고객인 남성에 의한 발화 역시 마찬가지다. 중개업체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어떤 남성은 “연예인급 여성은 ‘미끼상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6]

성매매를 연상시킬 정도로 매매혼의 성격을 일부러 강조하다시피 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행복한 결혼생활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중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강조하는 업체도 있다. 이런 업체에서 홍보하는 내용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중개업체의 경우 “한국 신랑들이 가정에서 아내에게 원하는 것, 시부모님께 효도하고 시집형제들과도 잘 지내는 법이나 한국의 문화나 풍습에 대해서나 한국음식을 요리하는 법, 한국의 풍습이나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법 등을 베트남 신부에게 알려주고 교육시키”[7]겠다고 약속한다. ‘시부모에 대한 효도’와 ‘한국 음식 요리 능력’을 원하는 수요가 있으며 업체들이 거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은, 중매 서비스의 고객인 한국인 남성이 배우자 여성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는지를 드러낸다. 여성은 섹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그것이 표면 아래로 가려진 한은 여성은 성실하게 가정 내의 노동을 담당해야 한다. 이주결혼 중개업이 보여주는 ‘가사 노동 및 돌봄 노동을 위한 여성 수입’의 측면은, 왜 유독 베트남이 이주결혼의 주된 타겟 국가로서 업체들에 의해 개발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즉 ‘베트남이 한국과 비슷하게 유교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베트남 출신 여성들 역시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시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업체는 홈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홍보하고 있다. “베트남 여성은 유교적인 가치 체계에 근거하여 우리나라와 사고방식이 비슷합니다.”[8] 여기에서는 베트남의 가족 사회에서 여성이 한국의 경우보다 비교적 평등적인 지위를 갖는다는 점을 보여줄 만한 몇몇 사실들[9]은 삭제되어 있다. 또한 베트남 ‘역시’ 농경 기반의 사회,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라는 ‘상상된 문화적 유사성’ 역시 작용하고 있다. 물론 문화적 상이함은 언어적 장벽의 체감과 함께, 결혼 이후에나 깨달을 수 있는 영역으로 가려진다.

명백히 존재하는 수요와, 그 수요에 충실히 응답하는 공급의 구조는 국적과 문화가 다른 사람과의 결혼이라는 선택지를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결혼 여성을 ‘돈을 주고 사온’ 만큼 ‘남편의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며, 한국인 남편과 그 가족들이 (나아가 한국 사회 전반이) 이들에게 한국 사회문화에 절대적으로 동화될 것을 요구하는 일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베트남을 포함한 몇몇 외국 국적의 여성에 대한 식민화의 작동을 가리켜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만,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결혼의 성사에서부터 남편과 아내 사이에 위계 관계를 생산해내는 것은 단지 자본에 의해서만이 아니며, 자본이 충실히 응답하여 재생산하고 있는 동화주의적 인식 역시 (한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요구 사항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동화주의는 식민화의 포섭 작용과 나란히 놓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의 배타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극단적인 동화주의는 이들이 자신의 출신 국적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낼 정로도 ‘한국인 아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경우 사회에서 배척하고 낙인 찍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한국이라는 민족국가의 내부로 포섭되었지만, 이 국가 장치는 이들을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10]로 만든다.

준난민적 상태가 유지시키는 식민화

바로 이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되어야 하겠다. 왜 국적-인종적 위계를 통해 젠더적 억압 구조인 가부장적 가족 제도 속에 포섭된 이들은, 이러한 삶과 결별하지 못하고 붙잡혀 있는가? 왜 결혼이주여성들은 성 및 노동 착취나 물리적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에도, 한국인 남편과 이혼하거나 적어도 독립하여 생활하는 일에 실패하고 마는가?

이주결혼을 중개하는 사업 체계가 어떻게 여성을 ‘수입’하여 ‘제공’하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이주결혼의 구조가 어떻게 계속해서 지탱되는지에 관해서는 해명해주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실제로 결혼이주여성들이 처해 있는 삶의 모습을 좀 더 가까운 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공익인권법재단에서 결혼이주여성의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해온 변호사인 소라미는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서 살 수 있는지 여부가 온전히 한국인 배우자의 손에 달려 있”[11]는 “한국의 부조리한 법제도”[12]에 관해 지적한다.

결혼이주여성이 F-6 사증을 발급받아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배우자가 초청을 해줘야 하는데 이때 남편의 신원보증서가 필수다. 결혼이주민이 한국에서 계속 합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 신원보증이 유지되어야 한다. 만약 한국이 남편이 신원보증을 철회라도 하면 결혼 이민자는 ‘불법’체류자가 되고 만다. 또한 결혼이주민에게는 최초 1년의 체류기간이 부여되는데 체류 기간이 끝나기 전에 체류 연장 신청을 해야 한다. 체류 연장을 위해서는 한국인 배우자가 ‘함께’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방문해야 한다. […] 만약 체류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체류 연장을 신청하지 못하면 이때에도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13]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한국의 이러한 법제도는 한국인 배우자에게 결혼이주민의 생사박탈권을 부여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았다.”[14] 결혼이주여성은 한국인 남편의 보증이 있는 한에서만 ‘합법적으로’ 한국의 영토 내에 거주할 수 있으며, 이는 뒤집어 말해 한국인 남편이 마음만 먹으면 이들을 미등록 이주자[15]의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이주여성의 취약한 법적 지위는 이들을 사실상 난민에 준한 위치에 머무르게 한다. 완전히 난민의 위치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위임’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은 억압과 착취는 물론 가시적인 가정폭력에도 취약한 처지에 있다.

이것은 한국의 법적, 행정적 제도에 뚫린 구멍일 뿐인가? 국가는 이들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에 이들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데에도 소극적인 것인가? 바로 이 지점을 면밀히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난민’은 어떤 존재를 일컫는가? 난민은 단지 망명자가 아니다. 난민은 국가 없는stateless 자,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가지지 못한 자이다. “불법적으로 거주하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경우에서 분명히 볼 수 있듯이, 국가 안에서도 얼마든지 국가 없는 존재가 될 수 있다.”[16] 미등록 이주민들, 특히 한국과 같은 법제도를 운용하는 국가에서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민들은 국가 없는 자들, 난민들이다. 그리고 미등록 이주민들이 국가의 법과 행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고 방치될 때, 이들은 “권력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법기능을 특권처럼 휘두르는 물샐틈없는 군사적 권력의 손아귀 안에 놓이게 된다.”[17] 이주노동자들의 경우뿐 아니라, 귀화하여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한국인 남편에 의존해서만 그 존재가 국가에 의해 규정되고 정당한 지위를 갖게 되는, 그야말로 준난민적 상태에 놓인 결혼이주여성들의 상황은 “박탈의 조건과 상태를 생산하고 유지하도록 고안된 권력과 강제로 구성된 어떤 조건”[18]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아감벤의 ‘자연상태’ 및 ‘벌거벗은 삶’에 대한 논의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며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난민적 상태에 놓인 자들은 “국가가 없는stateless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국가권력의 통제 하에 놓여 있다.”[19] 다른 말로 옮기자면, ““국가 없는 자”라는 범주는 민족국가nation-state에 의해 재생산될 뿐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를 강제로 끼워맞추려 하며 이 둘 사이의 하이픈을 쇠사슬처럼 사용하려는 권력의 작동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20] 버틀러가 지적하는 바는 국가가 행하는 배제의 권력 작동이 결코 배제되는 대상에 대한 소극성이나 무관심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국가 없음’이라는 범주를 생산해내고 국가 없는 자들을 배제하는 작용은 “단지 어떤 지위가 박탈되는 식의 수동적 분류 범주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특정한 지위가 부여되고 이에 따라 그들의 권리박탈과 추방을 준비시키는 것”[21]이다. 한국 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 사이에서 탄생한 자녀의 경우,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며(한국은 혈통주의를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그야말로 난민의 상태에 처한다. 노동이 목적이 아니라면,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방법, 그의 자녀까지 한국에 정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국 국적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다. 이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국가는 국가 없음(에 처한 삶)을 생산한다.

이주여성의 ‘삶의 터전’은 한국에 있으며, 즉 그들의 생활과 생존이 경제적으로 한국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출신국은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이것은 경제적 포섭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에 의해 권리를 보장받는 개인으로 ‘허가’되지 않으며, 사법적 행정적 배제의 대상이 된다. 그들의 국가는 어디인가? 귀화하지 않는 한 그들은 출신국의 국적이지만, 그들의 불안정한 지위와 출신국으로 돌아가는 일의 불가능성은 그들은 난민적 위치에 머무르게 한다. 한국의 국가 장치에 의한 지위 및 권리의 배제는 이들 여성이 처한 식민적 위치가 재생산될 수 있도록 뒷받침한다. 실제로 이행된 추방의 사례들을 통해, 국가가 국민이 아닌 (시민권이 없는) 존재를 절대적으로 배척한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례들은 유사한 위치에 놓여 있는 이주자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지위가 형편없이 취약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하여,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경제적 관계와 기반, 위치를 완전히 박탈해버리고, 자신이 선택했던, 그리하여 지금 겨우 뿌리내리고 있는 국가에서 추방될 수 있다는 위협은 실제적인 힘을 발휘하여 이주노동자들 혹은 이주결혼 여성들이 처한 식민적 상태를 강화하고, 그들이 그러한 위치에서 벗어나거나 적어도 그러한 상태를 개선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이주결혼 중개업체의 경우, 결혼이주여성의 지위가 고객인 한국인 남성에게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주도권이 남자 쪽에 있다”는 수사와 함께 버무려)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 문구로 만들어버린다. 이미 고객인 남성은 결혼이주여성이 ‘도망갈 것’을 걱정하고 있으며 업체는 그 걱정을 해소해주고자 한다. 국가의 법적 배제는 경제와 노동 및 그와 결부된 가족구조에서의 포섭을 뒷받침하고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의 구술 자료를 살펴보면, 이들이 한국인 남편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주된 요인은 아이(자녀)의 존재와 재정적 결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주여성들은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는 이들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한편, 취약한 법적 지위로 인해 경제적 주체로서 능력을 갖는 것부터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

나는 지금 5년 동안 남편이 용돈 안 줬거든요. 그것도 필요 없고, 벌면 내가 쓰고 굳이 돈을 주지 않아도 돼요. 지금 따로 살고 싶어요. 그래서 남편과 얘기했는데 남편이 지금은 돈이 없다고 했어요. […] 근데 제가 금년에 국적 취득을 할 생각이에요. 와이프하고 이혼을 하게 되면 여자애를 못 키워요. 국적이 있어도 엄마 아빠가 이혼하게 되면, 다 애기는 다 아빠가 데리고 가요. […] 제가 애기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갈 수가 없어요.[22]

한국의 법제도 하에서, 결혼이주여성은 협의이혼을 하면 출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처지이며, 출신국에 있는 가족들의 생계 문제, 사회적 낙인 등 여러 이유로 인해 귀국을 택하기는 쉽지 않다. 결혼이주여성이 독립적인 주체로 한국 내에서 거주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이혼 자체가 어렵게 된다. 이 때문에 2004년 국적법이 개정되었으나, 이주여성이 단독으로 체류 혹은 귀화하기 위한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23] 또한 양육권 분쟁에 있어서도 이주여성은 불리한 위치에 있다.[24] 결혼이주여성이 결혼 가족 구조로부터 벗어나려면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 하고, 영주권을 포함한 권리를 얻은 한국인으로서 배우자인 한국인 남성과 이혼하고 양육권까지 가져와서, 독립하여 생활할 만한 자금을 가지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살아야 하는 셈인데, 이는 너무나도 무리한 일이다.

요컨대 결혼이주여성이 결혼의 구조를 벗어나서는 안정적인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점은 이들이 경제적 활동의 주체가 되는 것과 양육권을 주장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놓인 착취적인 가족 구조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게 뒷받침한다.

이주여성들의 구술에서 보이는 또다른 특징적인 지점은 이들이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동화에의 강박이다.

지금 한국에 있으니까 나는 한국사람 해야 돼요. 제가 지금 바깥에 나가면 한국 아줌마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내가 한국말을 잘하면 한국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사람 아니잖아요. 바깥에 나가서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아요. […] 문화원 가는 것은 할머니가 얘기하지 않아요. […] 안 나가면 바보 돼요. […] 그래서 저는 한국사람 해야 돼요.[25]

‘나는 (이제) 한국사람이에요’가 아닌 ‘(한국에 있으니까) 한국사람 해야 돼요’라는 말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진술이 아니라 자신이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한 내면화다. 그런데 완전한 동화란 과연 가능한가? 동화주의는 동화에 실패할 경우에마다 가해지는 차별의 기제를 동반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차별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한국 정부는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어를 배움으로써 부부 간의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지 않는다. 정부는 다만 이주여성이 한국어능력시험을 통과해야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할 뿐이다. 또 한국 정부는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인 남성의 아내로서 혹은 한국인의 2세를 양육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않으면 이들이 위장 결혼을 통해 불법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동화되어 ‘한국 아줌마’가 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위험하거나 이질적인 존재다. 정부 규제와 관리는 사회문화적 차별(배제) 혹은 ‘동화주의’의 작동과 무관하지 않다. 실상 이 둘은 서로에게 의존하듯 얽혀서 “내부에 존재하는 외부”를, (준)난민적 상태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앞서 인용한 바 있는 버틀러의 정식을 뒤집어 보자면, ‘난민의 상태, 국가 없음이 있다는 것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민족국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가며 — 식민화와 난민화, 포섭과 배제가 교차하는 장소

국가는 하위계급 남성이 혼기를 지나도록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것을 문제로 파악했고, 외국에서 대량으로 여성을 공급하는 방식을 생각해냈다. 이 공급의 과정은 민간에 맡겨졌으며, 이주결혼 중개는 하나의 산업으로 확대되고 체계화되었다. 산업화된 이주결혼은 자본의 움직임을 통해 여성을 움직이고, 이들을 성적 대상이자 노동력으로 개발한다. 그리고 민족국가의 작동은 결혼이주여성을 권리 행사의 주체의 자격에서, 독자적으로 체류하고 거주할 수 있는 지위에서 배제한다. 이와 같이 국가 내부에 국가 없음을 만드는 (준)난민화는 이들의 위치를 더욱 취약하게 하고, 이들이 가부장적 가족 제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사법과 행정이 ‘아내가 도망갈지 모른다’는 남편들의 불안으로부터 그들을 안심시키고 치안을 행한다. 국가는 권리 보호의 대상으로부터 이주여성들을 배제함으로써 이들을 통치하며, 식민화의 권력이 작동하는 것을 지원한다.

요컨대 나는 여기에서, 결혼이주여성들이 식민화와 난민화라는 이중의 작용을 통해 억압받고 통치된다는 점을 소략하게나마 보여주고자 했다. 자본에 따른 권력 관계들이 작동하는 한편 국가에 따른 권력이 작동한다. 이 둘은 영합하고 공모하고 있으며, 자본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제국-식민지적 관계의 억압과 민족국가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사법적 행정적 통치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 있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리지는 못하게, ‘우리(한국인)’와 동등한 자격을 갖추지는 못하게 하기, 그러나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 어떤 한 역할을 도맡게 하기. 이러한 포섭적 배제와 배제적 포섭이 ‘베트남인’이라는 기호와 ‘여성’이라는 기호를 동시에 가지고 한국의 영토 내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작용하는 억압과 통치이다.

넓게 보았을 때, 이는 결혼이주여성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부터, 한국에게 베트남은 이중적인 대상으로 여겨졌다. 베트남 자체가 분열되어 있었고, 따라서 베트남의 어느 부분은 보호와 개발의 대상이었으며 다른(반대편의) 부분은 척결해야 할 적이었다. 그러므로 이미 이 시점에서 베트남에 대한 국가적 배제(어떤 집단에 대한 가장 극단적인 배제의 방식은 그들을 적으로 돌려 군사력으로 제거하는 것이다)와 경제적 포섭이 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아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에 국한되지 않는 다른 존재들, 이를테면 장애인과 같은 범주의 사람들 역시 식민화와 난민화, 포섭과 배제가 교차하는 장소에 위치됨으로써 억압받고 통치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남겨진 물음이다.


  • [1] 연애를 통한 결혼이 아닌 중개업체를 통한 결혼, 특히 여성이 수용국으로 이주하여 가정을 형성하는 식의 결혼을,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이들끼리의 결혼을 가리키는 말인 ‘국제결혼’으로 뭉뚱그려 지칭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이때의 이 ‘국제성’이란 ‘세계화의 시대에 국내에서만 배우자를 찾을 수 있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자’는 국가적 장려의 목소리가 개입된 것이지 않은가?) 본고에서는 이와 관련한 여러 연구 및 저술의 선례를 참고하여 이러한 형태의 결혼을 (수용국으로 이주하여 결혼하는 방식의 결혼이라는 점에서) ‘이주결혼’으로, 결혼 당사자인 여성은 (결혼하여 수용국에 이주해 있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결혼이주여성’으로 지칭하고자 한다.
  • [2] 이는 1980년대에 이미 유사한 문제를 맞닥뜨린 일본이 행한 정책을 모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3] 2017년 여성가족부의 의뢰로 진행된 통계조사 연구에 따르면 “국제결혼중개업” 이용자(한국 국적 남성)의 배우자인 결혼이주여성의 70% 이상이 베트남 출신이다. 설동훈 외, 《2017년 국제결혼중개업 실태조사 연구》, 여성가족부, 2017.
  • [4] 류인하, “중개업소 통한 국제결혼의 매매혼 ‘예고된 파경’”, 주간경항 1337호, 2019. 07. 29.
  • [5] 같은 기사.
  • [6] 같은 기사.
  • [7] ‘ㅂ’ 업체 홈페이지에서 직접 인용.
  • [8] 이재은, “한국 남성은 왜 베트남 여성을 선호할까”, 머니투데이, 2018. 12. 10. 기사의 자료 사진에서 재인용.
  • [9] 예컨대 베트남 여성들의 구술 내용에 따르면, 베트남의 경우 명절의 가사 노동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있지 않다고 한다.
  • [10]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주해연 역,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산책자, 2008.
  • [11] 소라미,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선 이주여성」, 이주여성인권포럼(공저),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오월의봄, 2013. 239쪽.
  • [12] 같은 책, 238쪽.
  • [13] 같은 책, 240쪽.
  • [14] 같은 책, 241쪽.
  • [15] ‘불법체류자’라는 용어가 폭력적, 반인권적 명명이라는 이주민 인권운동가들의 문제제기는 타당하다. 본고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미등록 이주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 [16]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24-25쪽.
  • [17] 같은 책. 14-15쪽.
  • [18] 같은 책. 15쪽.
  • [19] 같은 책. 17-18쪽.
  • [20] 같은 책. 22쪽.
  • [21] 같은 책. 24쪽.
  • [22] 김태원, 『결혼이주여성의 삶과 적응』, 경인문화사, 2012. 153쪽. 구술자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다. 이름 : 엔티욱탐(1986년생), 출신국 : 베트남(다이닌), 출신국 가족사항 : 아버지, 남동생, 한국 가족사항 :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딸1(6세), 아들1(4세).
  • [23] 소라미,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선 이주여성」, 242-243쪽.
  • [24] 같은 책. 251쪽.
  • [25] 김태원, 『결혼이주여성의 삶과 적응』, 156쪽. 구술자는 위와 동일.
단현
danhyun01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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