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기왕이면 잘 살아보자!

 사젹인 경험으로 글을 시작해본다. 진로상담을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꼭 던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너는 왜, 무얼 위해서 사니?”

 무의미한 시간때우기를 질책하는 질문은 아니지만, 의도치않게 뜨끔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 학생들에게, 나는 ‘애시당초 이유를 물어보는 질문에 의미와 무의미의 구분이 어디에 있겠냐!’ 고 항변한다. 학생에게 아주 잠깐의 의문을 안길 수 있다면 질문은 충분히 역할을 다한다. 고민 끝에 조심스럽게 나오는 학생의 이야기는 삶의 가짓수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굳이 크게 분류를 하면 ‘사니까 사는거지요’ 와 ‘잘 살려고요’ 로 구분된다. 전자의 경우, 선생님의 입장에서 학생의 내적동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질문의 방향을 조금 돌릴 필요가 있다.

 “기왕이면 잘 사는게 좋지 않아?”

 이구동성으로 잘 사는게 더 좋다고 얘기한다. 학생의 입장에서는 골치아픈 함정에 빠진 셈이다. 그렇지만 여기까지 끌고 았으면 다음 질문은 뻔하다.

 “그렇다면 잘 사는게 무언데?”

 결국 ‘하고 싶음’에 대한 애기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떤 모습의 나를 상상하고 싶은지의 얘기는 결국 현재를 대하는 태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는 모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 순간 방향성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번도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며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퍽 즐겁다.

 하지만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이 개인적 성찰은 아니므로 학생과의 대화는 여기서 줄인다. 다만 ‘잘 살아보자’는 서술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따라 가보고싶다. 각자의 이유로 생존을 이어나가기 벅차다고 느끼는 세상에서, ‘잘 삶’을 되뇌이면서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단현의 언어를 빌리자면 타인의 죽음이 살아나도록 만든 자이며, 그저 살아남아 살아가게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앞에 서서 말을 하는 상상을 한다. 그들의 앞에서 외치는 기왕이면 잘 살아야한다는 말은, 산업화 시대의 ‘잘 살아보자’로 대표되는 일련의 캐치프레이즈들과 다를 수 있을 지. 70년대의 ‘잘삶을 열망함’은 21C의 안락을 빚어낼 수 있었지만, 노동력이 될 수 있는 사람들과 노동력이 될 수 없는 사람들 모두에게 아픈 말이었다. 노동력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은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표준에 걸맞는 인재가 되어 ‘개천에서 용이 나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반면 사회가 정한 표준에 걸맞지 않아 노동력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은 무대위로 나설 수조차 없다. 그들은 표준의 벽 뒤로 은폐되어 빛나는 역사를 구성하는 국민의 일원에서 배제된다. 배제되며 입은 상처는 치료하더라도 흉터로 남는다. 치료받지 못한 상처는 곯는다.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지. 여전히 담론은 어떻게 살아갈지를 논의하지 않는다. 무엇을 기대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질문을 던지고 논의하지 않고, 다만 몇 가지의 표준을 제시할 뿐이다. 교육은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써 기능해야한다. 적어도 현재의 교육 담론 앞에선, ‘계층’의 벽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사다리를 제공하지 않는 교육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교육의 주요 수혜자인 평균에 해당하는 사람들, 혹은 기준의 틀에 본인의 신체를 끼워 넣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논의는 주된 논의 사항이 아니다.

 복지는 또 어떤가. 복지의 ‘수혜자’들은 수십 장의 서류를 작성해서 본인이 수혜자임을 입증해야한다.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본인의 힘듦을 증명하고, ‘복지의 수혜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한다. ’받고 있는 것‘ 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은 그들의 주된 의무 중 하나이다. 복지의 수혜는 감사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성별 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 담론이 촉발하는 개인적인 갈등, 혹은 개인적인 갈등을 촉발하는 담론들. 싸움  속에서 개인은 경쟁으로 내몰리고, 경쟁에서 패배하면 표준이 만들어낸 공고한 벽 뒤로 은폐되어버린다. 목소리를 빼앗긴다. 목소리를 빼앗기고 지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기억하고, 사랑하고, 애도하고 싶다. 하지만 지치고 힘들다. 그 앞에 서있는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어 몸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한 조건은 없을까? 기왕이면 힘을 내기 위한 위로와, 힘을 주는 움직임을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어떤 문제를 직면해야 하는가?

 대한민국에서 담배는 ‘위험성을 알고 선택하는 기호품’[1]이다. 2014년 대법원은 지난 15년간 진행된 흡연피해자 소송에서 “이미 담배가 암 등 여러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널리 알려져 있고”[2], “기호품 담배에 통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안정성이 결여됐다고 보기 어려”운만큼, 담배때문에 원고들이 걸린 질병은 “역학적인 인과관계가 없거나 불분명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의 말을 추가적으로 인용하면, “담배를 처음 피우거나, 앞으로 계숙 피울 것인가는 모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원고는 피해를 입증하고 싶다면 흡연 때문에 특정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엄밀하게 증명해야한다. 그러나 국내 담배회사는 “다른 담배회사의 제품보다 특별히 더 위험한 제품을 만든 게 아니라면 (위험성을 알리는 자료를)공개할 필요성이 없다”.

 많은 통계자료들이 담배와 신체의 ‘상관 관계’를 증명한다. 그러나 유해성이 인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질병과의 ‘인과 관계’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애시당초 담배의 유해성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98년 담배 회사의 모든 내부문건을 공개하게 만든 미국 법원의 결정이다. 몰론 담배회사는 내부 실험을 통해 담배의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회사의 펀딩을 받는 과학자들의 연구는 담배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모호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스트레스나 식습관 등의 변인이 다양 한만큼 흡연을 암이나 심장병의 주된 원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러나 담배를 핀 수많은 사람들이 입증할 수 없는 이유로 생긴 암으로 사망했다. 설사 인과가 불분명 하더라도, 유의한 상관관계가 있으므로 간과할 만한 문제는 아니다.  

 김승섭 교수님은 저서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 데렉 야크Derek Yach 박사에 관한 두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3] 2001년 발표한 논문 「담배를 권하는 가짜 과학Junking Science in Promote Tobacco」에서, 그는 담배회사들이 과학자들을 어떻게 매수해서 자신들의 논리를 옹호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자본력을 가진 담배회사들이 이윤 창출을 위해서 과학자들을 섭외하는 과정을 비판한 것이다.[4]

 16년 뒤, 데렉 야크 박사는 필립 모리스가 매년 최소 8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연기 없는 세상Smoke-Free World’ 의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재단의 목적은 전자 담배 등의 대안 제시를 통해서 전세계적인 흡연률을 낮추는 것이다. 문제는 언급되는 필립 모리스가 말보로나 버지니아 슬림 등의 담배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굴지의 담배 회사라는 것이다. 꽤나 황당한 일이다. 데렉 야크는 학술지 『랜싯Lancet』에 기재된 논문 「연기 없는 세상을 위한 재단Foundation for a smoke-free world」 을 통해, 자신이 왜 하필이면 필립 모리스가 설립한 재단에서 일하기로 했는지를 설명한다.

 

[… ]이 글에서 데렉 야크는 자신이 과거 세계 보건기구에서 일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세계적으로 금연운동이 맞닥뜨린 어려움을 말합니다. 그는 금연 운동의 인적, 제도적 역량이 부족하고 관련한 지원금 역시 부족한 상황에서, 담배회사의 적극적인 반대로 인해 금연률은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상황에서 금연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덜 위험한 담배를 권하는 것이 담배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는 데 있어 중요한 일이고, 전자 담배가 그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

–김승섭 『우리 몸이 세계라면』 中

  다양한 규제로 인해 점차 사양 산업화 되어가는 궐련 담배 시장을 대비하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교수님의 말처럼) 전자담배는 그들의 ‘10년 뒤 먹거리’이다. 아직 궐련 담배에 대한 논쟁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업은 다음 10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한 피해자가 분명한데도, 개인은 내야 하는 목소리의 종류와 대상을 특정하지 못한다. 심지어 흡연 문화의 직접적인 원인을 담배회사가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현재의 담론에서 전자담배가 줄일 수 있는 몇 십 퍼센트의 사망률을 무시할 수 있는가? 물론 전자담배가 궐련 담배에 비해 무해 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이미 담배 시장이 존재하는 이상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질문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담배는 이미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다. 담배와 관련된 담론은 ‘신체에 유해 하지만, 그럼에도 피우는 것은 당신의 자유’라는 개인의 영역으로 넘어와버렸다. 2014년의 대법원 판례는 개인적 선택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 여준다. 적어도 연기 없는 세상Smoke Free World을 납득할 수 없다면, 담배 없는 세상Tobacco Free World를 지향한다면, 회사의 움직임을 더더욱 놓쳐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기업으로서의 담배 회사는 이윤창출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어떤 의사결정이든 그것은 단기적, 혹은 장기적 관점에서 고객을 확보하고 상품 시장의 저변을 늘리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전자담배의 예시처럼, 여기에 이익을 추구하는 의사결정이 윤리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면 의사결정의 힘은 훨씬 강대 해진다. 예를 들어보자. “기존의 담배가 중독성이 있고 사망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담배의 종류는 다양하며, 그 독성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오히려 흡연자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5]는 명제는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일종의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정보공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상품 담배의 양성화를 담보한다. 지금까지는 유해한 ‘담배’가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었다면, 정보가 공개된 이후에는 세분화된 ‘유해성’이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교묘하게 담배는 용인된다. 가격 차별을 할 수록 경계에 걸쳐있는 소비자를 더 많이 획득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일종의 ‘유해성 차별’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용인할 수 있는 유해성을 가진 담배는 새로운 소비층을 획득할 수 있다. 동시에 상품 담배는 선택의 대상으로써 양성화 된다. 양성화된 상품에 선택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기회가 제공되는 상품이 양성화 되는 도식이다. 담배 산업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 제도적/윤리적 문제였음을 생각한다면, 담배의 양성화는 시장의 확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자본주의 시장의 법제 하에서 일련의 논리는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직면 해야할 문제는 무엇인가.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흡연으로 인한 건강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담배의 유해성을 입증할 때쯤이면 담배회사는 이미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확보할 것이다. 그마저도 거대한 자본력을 등에 업은 로비로 인해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지난 50년간의 담배회사의 의사결정과 현재의 전자담배로의 전환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거대 자본이 몸을 불리는 속도가 소규모 자본과 비교 했을 때 더 크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차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질 것이다. 결국 윤리적 정당성을 넘어, 자본이 움직이는 개인의 기호와 선택의 문제를 수익성의 관점에서 생각하며 문제에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떻게, 무엇을 수단으로 삼아야할까?

 

 2.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 만의 방

[…] 그녀는 살아 있지요. 위대한 시인은 죽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계속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속으로 걸어 들어와 육체를 갖게 될 기회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힘으로 그녀에게 이런 기회를 줄 수 있는 가ᅟᅳᆼ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때에 기회가 도래하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이 종종 스스로 내던졌던 육체를 걸치게 될 것입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中

 ‘생존’과 ‘현실적인 조건’ 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안고 버지니아 울프를 생각한다’ 그녀는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자기만의 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강의를 시작한다. “진실을 밝히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견해를 어떻게 가지는지” 보여줌으로써 “강연자의 한계와 편견, 그리고 특유한 성격을 관찰함으로써 그들 나름의 결론을 이끌어 낼 기회”를 줄 수 있을 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6]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를 생각하던 그녀, 메리는 대학의 특별연구원이나 학자들에게만 입장이 허용된 잔디밭을 벗어나 ‘적합’한 자갈길을 걸어야 했으며,[7] “여성이 도서관에 들어가려면 대학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 하기 때문”에 도서관으로부터 저주받는다.[8] 동등한 선거권과 발언권을 가진 시민조차 아니었던 19C 영국을 살던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사업계에 들어갔더라면, 인조 실크 제조업자가 되었거나 증권거래소의 실력자가 되었더라면,” “탐험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고”, “지상의 유서 깊은 곳들을 목적 없이 돌아다닐 수도 있고”, “4시 30분이면 편안히 집에 돌아와 시를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 다만 그녀의 어머니가 정말 15살에 실업계에 발을 들였다면, 메리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9] 표준적인 어머니는 건강한 자식을 기르도록 요구 받았다.

 

대부분의 여성은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 포프 –

여성은 극단적이다. 그들은 남성보다 우월하거나 또는 저열하다.

– 라 브뤼예르 –

  “어떤 야만인들은 여성에게 영혼이 없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성이 반쯤 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며 그러한 이유로 그들을 숭배”한다. 무력감을 느끼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녀는 하나의 그림, 얼굴, 형체를 그린다. 그것은 ‘여성의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 열등성’이라는 제목의 연구서를 집필하는 데 몰두하고 있는 X 교수의 얼굴이자 형상이다.[10]

 그러나 무력과 쓰라림 속에서 그녀가 발견한 것은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놀라운 기질”이다.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그녀에게서 500파운드의 고정 수입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런만큼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고,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위대한 증권 증개인이나 변호사가 될 것도 없이, “일 년에 500파운드만 있으면 햇빛을 받으며 살아가기에 충분하다”[11]

 여성은 예술가가 되지 않도록, 훌륭한 어머니가 되도록 ‘설교와 훈계’를 받는 사회에 대해서 울프는 예술가와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말한다.[12] “예술가의 마음은 자기 속에 내재한 작품을 흠 없이 완전하게 풀어놓으려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기이 위해서 셰익스피어의 마음처럼 작열해야 한다. 그 안에 어떤 방해물이 있어서도 안 되고 태워지지 않는 이물질이 끼어서도 안 된다.”

 그리하여 울프가 내린 결론은 그녀가 시를 쓰려면 ‘일 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문에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방’ 이다. 과거에도 현재도 가난한 시인들은 아주 작은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위대한 작품들을 산출하는 지적 자유로 해방될 희망이 아테네 노예의 아들만큼이나 없는 것이다.” 결국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달려있다. 그리고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있다. 여성은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일말의 기회도 없었”다.[13] 그리하여 울프는 돈과 자기만의 방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잘 살아야 현실적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게 아니라, 잘 삶이야말로 현실적 조건이다. 사람이 아프다면 계절, 물, 공기, 태양 등의 환경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면밀하게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찬 바람과 더운 바람, 공통적인 바람과 각 지방의 특수한 바람들을 고려해야하는 것처럼[14], 개인의 문제에 접근할 때는 경제적 풍요로움과 빈곤함,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의 특수한 상황과 필요조건에 대해서 고려해야한다. 결국, 잘 살기 위해서는 최소한으로 잘 살아야한다. 적어도 상상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고정수입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방이 하나 필요하다. 현대적 관점에서 얘기한다면, 삶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한 재정적/공간적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현대의 담론에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녀의 말마따나 어떤 주제가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때, 글 하나가 진실을 밝힐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사회 – 각 성별의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율이 와 39.7%와 63.5%로 두 배 가까이 차이 나고[15], 노동시장에서의 지위와 가족 내에서의 지위 모두를 추구하는 삶의 양식을 강요 받고, 2030 여성이 경제위기의 고용 타격을 가장 먼저 받는 근로 환경[16] – 의 모습이라면, 현실적 조건을 얘기하는 것은 여전히 유의미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주장하고 싶다.

 

 3. 연대의 가능성

 서귀포 도순동에 가면 숙박 스타트업 ‘다자요’가 운영하는 돌담집이 있다. 마을의 빈집을 공짜로 빌리는 대신, 건물의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숙박으로 돈을 버는 사업 모델이다. 이 때 리모델링 비용은 와디즈를 통한 크라우드펀딩으로 충당한다. 집주인은 어차피 쓰지 않을 집을 공짜로 인테리어하고 미래의 수익원을 기대할 수 있고, 다자요는 최대한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지금이야 제주도 어디에서나 에어비앤비를 이용해서 숙소를 구할 수 있지만, 다자요가 사업을 기획할 때만 해도 제주도는 숙소가 300개가 채 되지 않았다. 때문에 트랜드가 급격하게 변화한 후, 영세한 규모의 스타트업인 다자요는 에어비앤비와 차별화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단순 숙박중계업체인 에어비앤비와는 다르게 다자요는 빈집을 무상임대해서 리모델링 후 숙박 영업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존의 제주의 빈집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관광객들은 제주도에서만 즐길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 체험을 하는 곳이 드문만큼, 편안한 내부와 집 앞의 감귤밭을 함께 즐기는 옵션은 매력적이었다.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크게 줄고, 20-30대의 자유여행층이 크게 는 것도 수요층 형성에 한 몫을 했다.

 제주도는 육지로 자식을 내보내고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 지방이다.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섬을 탈출해야 한다는 정서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교육과 문화 생활 인프라의 차이가 워낙 큰 것도 한 몫을 한다. 그런 노인 분들이 아프거나 세상을 떠나면서 빈집이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 제주의 실정이다. 제주도의 시골은 동네 별 빈집과 감귤 창고의 평균을 내서 동네 수로 곱해보았을 때, 약 2만 5000여채가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비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17] 빈집이 많아짐에 따라 신(神)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 유지되어 온 마을 공동체가 깨지고, 결국 마을은 공동체 기능을 잃어간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투기를 노리고 진입한 외지인과의 알력 다툼도 공동체 파괴의 주요한 요인이다.

 그런 만큼 돌담집을 활용한 사업은 마을 사람들에게 긍정적이었다. 외부 자본이 개입하면서 빈집들이 헐리고 빌라들이 들어서는 시점이었기에 더욱, 돌담집의 재탄생은 마을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게기가 되었다. 지역 주민의 말을 빌리자면 “어느 순간부터 지역 사회에서 투사”의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제주의 것을 지켜야한다는 인식을 중심으로 마을 공동체가 생기를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다자요의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림부)가 실 거주자가 없는 사업의 운영을 제한한 것이다. 지난 8월 28일 열린 ‘중소도시 및 농어촌 빈집 재생을 통한 관광숙박 활성화 입법과제 토론회’에서 농림부는 다음의 입장을 견지했다.[18] ‘농어민의 소득 증대’를 위해 농어촌 민박을 영업을 허가한 것이므로, 거주자(=농어민) 없는 숙박 모델은 절대 불가라는 것이다. 투숙객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맞서는 다자와 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미 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노인들이 사망하고 나면 집을 관리할 사람도 사라지는만큼, 차라리 빈집을 장기간 잘 쓸 수 있도록 리모델링해 자산가치를 올리고 전문 운영기관이 숙박업을 운영해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는 것이 농어민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를 활용한 시스템 구축은 오히려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기사에서 추가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의 농어촌정비법에 입각한다면 농민들의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관광객들이 실제 주인이 거주하는 집에 지내려고 하지 않을뿐더러, 개인이 숙박으로 인건비 이상의 비용을 벌기 위해서는 객실을 8개 이상 운영해야 수지가 맞는데, 개인 사업자로서의 농민은 사업을 운영할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의 현황을 잠깐 살펴보자. 최근 정부는 다양한 형태와 목적의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현행 인증제를 등록제로 개편하기로 했다.[19] 진입장벽은 낮추고 평가는 까다롭게 제도화함으로써 혁신 기업과 1인 창업자의 진입을 늘린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적 기업의 내실은 부실한데, 사회적 기업 인증 신청 사유의 약 30.9%가 정부 인증을 이용한 이미지 제고나 지원의 유치를 위함이다. 그마저도 지원금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의 절반이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사업의 형태 역시 ‘준복지’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사업 모델의 ‘수혜자’와 ‘수요층’이 명확하게 존재하는데, 이는 사회적기업인증 유지를 위해서는 취약계층의 고정 비율을 유지하고 이윤의 사회적 목적 사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윤 창출이 사실상 불가능한만큼, 적자 재정을 운영하며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손실을 매꾸는 것이 대부분의 사업 모델이다. 설사 지역 주민들의 고용이 창출된다고 하더라도 단순 노동력의 확보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2017년 실시된 사회적 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20], 인증사회적기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목표는 일자리창출과 근로조건 향상 및 소득향상(36.9%)이었다. 문화예술 공공성 확대나 장애인의 사회참여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은 약 10%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 빈집 관리가 불가능한 공동체를 살리는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적으로 ‘지역 주민의 직접적 참여’를 말하는 농림부의 주장을 다시 생각해본다. 부양가족 없이 홀로 사는 노인들은 복지의 주된 수혜층이다. 자생할 수 없다면 그들 역시 또 다른 복지의 수혜층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혜 계층을 ‘수혜 계층’으로 단정해버리는 말하기가 아닌지. 단적으로,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서 손해를 매꾸는 구조의 모델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지원금은 정책에 따라서 언제든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고, 결국 정부에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필연적으로 공동체의 담론은 정부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부합하도록 편집된다.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공동체를 적당한 수혜자에 위치시켜 놓으면 그만이다.

 핵심은 자생이다. 계층이 가지고 있는 가용 자원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설사 적자가 나더라도 자체적으로 흑자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고민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가지고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가 구축된다. 지원금은 구조를 만들기 위한 안전망을 형성하기 위해서 쓰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수혜계층으로 특정지어지는 사람들이 자생적이고 지속가능하게 수익과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방향의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계층과 공동체를 고려하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에서 연대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4. 맺으며

 결국 잘 살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기왕이면 행동의 이유는 윤리적이면 좋겠지만, 행동의 근거가 윤리적이기만 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적다. 자본이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는 시대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의 논리가 자본을 따라가고 있다면, 적어도 자본이 실제로 행사하는 영향력 앞에 마주볼 수 있어야한다. 마주보기 위해서, 삶을 이어나갈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면, 적어도 스스로를 구원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필요하지 않겠나. 삶의 ‘자기만의 방’이 위치할 수 있는 위치가 바로 이곳이다.

 고유한 개인들이 ‘수혜자’라는 단어 안에 은폐된다. 그리고 다시, 수혜자의 목소리는 은폐된다.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가치를 생산할 수도 없음에도 일방적으로 자원을 제공받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불편함에 대해서는 선뜻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고유함의 자생가능성을 다시 생각한다. 은폐된, 어쩌면 수혜의 조건 그 자체에 해당하기 때문에 은폐되어 버린 개인의 고유함을. 장막을 걷어내는 해결책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생’과 ‘연대’는 필요조건이다. 최소한의 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며, 살아가기 위한 조건. 고유한 사람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 연대하고, 다시 연대하기 위해서 수익을 내고. 그러기 위하여 그들만의 자생을 생각하는 구조. 자생과 연대를 발판삼아 확보한 자기만의 방에서, 고유함을 찾은 개인은 다시 진정으로 현실을 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1] 대법원 「담배는 위험성 알고 선택하는 기호품」 https://news.joins.com/article/14417182

[2] 이하 기사에서 인용

[3] 김승섭, 『우리 몸이 세계라면』 p.46, 동아시아(2018)

[4] 그들의 전략은 교묘하다. ⓐ회사의 지원을 받은 과학자들은 담배의 유해성에 의문을 제기아는 논문을 생산하고, ⓑ자존감이 뚜렷하고 구매력이 있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기능하기도 하며, ⓒ다양한 가정용품에 할인혜택을 제공해 저소득층 수요자들의 불안감을 덜어주는 장치로도 기능한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 p.36

[5] 김승섭, 『우리 몸이 세계라면』 p.5

[6]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민음사, p.19

[7] 같은 책 p.21

[8] 같은 책 p.22

[9]  같은 책 p.4

[10] 같은 책 p.55

[11] 같은 책 p.65

[12] 같은 책p.89″만약 자신의 작품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셰익스피어였습니다.

[13] 같은 책 p.157

[14] 히포크라테스, 『공기, 물, 장소에 관하여Peri aeron, hydaton, topon』 中

[15] 김창연, 『고용 양극화와 여성고용』,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사업보고서(2010)

[16] 배은경, 『경제 위기와 한국 여성 : 여성의 생애전망과 젠더/계급의 교차』, 한국여성연구소(2008)

[17]  남혜현, 「당신 집 10년만 비려주세요, 공짜로」 Byline Network(2018)

[18] 남혜현, 「일본은 어떻게 빈집 문제를 해결했나」 Byline Network(2019)

[19] 노경묵, 「사회적 기업 절반이 적자인데… 등록제 전환으로 ‘유령기업’ 양산 우려」, 한국경제(2019)

[20] 김형종 외 7명, 『2017년 사회적기업 실태조사』, 한국노동연구원(2017)

 

유채
dksrud63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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