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아우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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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2불 방금 전
거고 뜨거운 물 맞으면 크루소로 변신한다 그러지 왜 란마처럼 ㅋㅋ
걍 너네도 다 어디 판타지에 나오는 단역이라고 해 X라이들 ㅋㅋ

레지던트2불 2분 전
아직도 이상한 사람들 많네 음모론자 X라이들 ㅋㅋ 의사 사망진단보다 미친놈 일기가 더 믿어진다고라고라? ㅋㅋㅋㅋ놀구있네 왜 이거 다 그냥 정기자가 첨부터 끝까지 주작질한 거라 그러지 왜 ㅋㅋㅋ 울프가 알고보니 레즈비언흡혈귀였던

아놔333 24분 전 6
저 사람 울프 아니고 크루소임. 정확히 말하면 두 사람이 동일인물임. 예전부터 도플갱어설 있었…… 진짜 불쌍한 건 크루소여사랑 울프 동거녀임. 아 진심 이기적인 X끼다…… 거지사기꾼이지만 부럽……

모래 38분 전 2
레지던트2불님 그건 인터뷰 아니고 불법으로 유출된 감청 보고서입니다. 일방적인 주장을 기정사실화하시면 안 돼죠. 근데 솔직히 저 사람이 울프씨면 실망스럽긴 할 듯.

레지던트2불 1시간 전 3
뭐냐 이런걸 단독기사라고 또 낚였네 울프가 죽은지가 언젠데 팩트체크도 안하냐 이러니까 기레기 소릴듣지 기자 완전 X라이 → 울프는 실종된게 아니고 죽은거임 의사인터뷰도 있음ㅋㅋ


정한아. ‘(단독) 아마도, 울프 씨?’. “울프 노트”. 2018(전자책). 일부

온갖 소문을 달고 ‘론 울프’ 씨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가 도대체 누구길래 사람들이 저러나. 그의 노트 『울프 노트』는 또 뭔가. 필자로 말하자면 이 글을 쓰다가 털이 좀 자란 것을 발견했다. 이빨이 자라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가 고프다. 어쩐지 사고를 칠 것 같은 기분이라, 후딱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 시집은 소문으로만 들리는 어떤 인간형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이 시집이 발간된 이후, 그들(우리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1. 스스로를 선택한 시인

「나는 왜 당신을 선택했는가」를 먼저 읽는다. ‘당신’은 “공부가 노동이 되고 문학이 상품이 되어 버린 현실을” 도서관에 앉아 생각하는 사람이다. “파업해도 당신 말곤 아무도 타격받지 않을 현실” 때문에 당신은 “권태기의 부부처럼 책임감으로” 시를 쓰게 된 지 오래다. 그 이후에 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거짓말이나 농담을 해왔다. “이제 두근거릴 때라곤 죄지을 때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재미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몰랐었다. 이제 “요절하기에도 전향하기에도 늦은 나이”가 됐다. 그간 “고독하지 않았”고 “영혼을 보살피”지 않았고 “세상으로부터 잊히기 두려워 자기 자신을 영원히 잊어버리기로 서서히 결심해버렸던 것이다.” 통렬한 고발문이다.

그러나 호명되는 ‘당신’은 누구인가? 시인(내포작가)일 것이다. 그리고 발화자는 추측건대 울프 씨일 것이다. 그런데 울프 씨는 시인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 아닌가? 시인은 울프 씨를 통해 스스로를 호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시는 고발문에서 멈추지 않는다. 일종의 반성문이 된다. 좋은 시작(始作, 詩作)점이다. 여기 스스로를 선택한 시인이 있다. 아무리 게을러져도 누구 하나 혼내지 않는 책상, 싸움도 없는 책상, 이 더러운 책상(「봄, 태업」) 앞에 시인은 앉았다.

스스로를 야단치는 일은 지금-여기의 세계를 선연하게 인식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시 「어제의 광장과 오늘의 공원 사이」를 읽자.

여의도광장은 보라매광장은
공원이 된 지 오래
우리에겐 공원이 필요했지
그늘이 사생활이 손톱 밑의 가시와 섬세함과
머큐로크롬, 놀란 가슴과 위안의 손길이
 
도서관 앞에 회관 앞에
나무들이 무성하고 뿌리는 얕다 평화는
숙성 기간이 필요하답니다 오랜 고요가
심오한 의미를 담는 법이죠 하지만
 
사춘기의 연애편지에 무심코 써놓은 유서에
그대가 환장하게 사랑했던 연애시처럼
정치시처럼
게다가,
그대가 시팔시팔 욕하면서
언젠가 술집 화장실 거울에 주먹질을 했을 때
오지게 쏟아지던
 
차마 말할 수도 노래할 수도 없는
그, 뭐냐, 거시기가
산책하듯 엷은 평온으로 덮이었을 때
그, 뭐냐, 거시기를
실종된 우리들의 理想이라 불러본다면;
 
사랑(저런, 저런,)
행복(아니, 아니.)
집 나간 고양이들의 역사(아뿔싸.
한 번도 자기 집에 살아본 적 없는)


「어제의 광장과 오늘의 공원 사이」 전문

그다지 복잡할 것 없는, 진솔한 시다. 세상의 광장이 공원이 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새 불을 지피는 광장보다는 사생활과 휴식과 섬세함과 위안이 필요해졌다. “고요가 심오한 의미” 운운하며 심은 나무는 이제 도서관과 회관을 뿌리로 덮었다. 우리들의 “거시기”, 그러니까 유서와 연애시와 정치시와 취중의 욕설 같은 것들은 “산책하든 엷은 평온으로 덮”인 “실종된 우리들의 理想”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사랑이나 행복은 없다. “한 번도 자기 집에 살아본 적 없는” “집 나간 고양이들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

한 번도 자기 집에 살아본 적 없는, 집 나간 고양이들의 역사. 이상의 시 몇 편들을 경유하고 나면 아무래도 이런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은 자들의 표정, 겉보기에는 평안으로 덮인 그들의 공원, 그러나 그들/그곳들을 지배하는 것은 어떤 무기력함이다. 우리는 어느새 중성화당한 고양이 같은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갈 집도 없으면서 집을 나가버린 고양이들.

밥과 변기만으로 살 수 있겠냐고, 이 잡식하는 벌거숭이 종자들아,
뭔지 모르겠지만 내 안엔 해방되어야 할 난폭함이 있다고
 
[…]
교양을 쌓았잖어 날마다 무언가를 (거의 모든 것을)
참으며 자기가 자기를 중성화하며 그것이
교양 아닌가 우리 집 고양이의 사춘기에
날뛰는 야생을 문 뒤에 두고 교양을 쌓고 있는
 
나와, 나의 닳아버린 송곳니와, 그러나
여전히 꺼칠한 혓바닥과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승화된 난폭함
 
중성화라는 말은 참 중립적이다
물어뜯고 싶은 것들이 세상에 이토록 가득한데
기특하게 사람들이
아무튼 거리를 활보한다


「고양이의 교양」 일부

우리의 난폭함은 어디로 갔는가. “실종된 우리들의 理想”은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세상은 우리도 모르는 새 중성화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렇다, 중성화라는 말은 많은 것을 중립적으로 만든다. 우리는 “물어뜯고 싶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밥과 변기만으로” 살아가는지 모른다. 이 기특한 고양이들, 하고, 시인은 자기만 야단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자기와 세계를 동시에/복합적으로 돌아보는 지점들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돌아봄은 야단인 것 같지만은 않다.

쓰는 일을, 읽는 일을
게을리해도 아무도 벌하지 않고
생각을 중단해도 누구 하나 위협하지 않는 더러운 책상 앞
불빛은 떨어지고 밤이면 길에서
조용히 죽어갈 어린 고양이들의
가냘픈 울음소리


「봄, 태업」 일부

고양이들은 동시에 “길에서 조용히 죽어”가기도 하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과제가 있다. 저 고양이들은 누구인가?

2. 아마도, 울프 씨?

아, 그래, 나는 죄를 지었어
뭔지 모르지만 분명 죄를 지었네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울컥거리는 숲으로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들어가야 해
[…]
 
오, 붉은 만월滿月
동그랗게 입술을 벌린
그날의 그늘진 얼굴을
아무도 증언하지 않는다해도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말해주게 제발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할 건가?


「(단독) ‘울프 노트’의 잃어버린 페이지」 일부

자기 도덕을 자기에게 증명하려고 끊임없이 혼자 자책하는 사람
─사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만 죽어버려라(울프 씨, 당신 말이야, 하긴, 당신은 실종됐지)


「PMS」 일부

울프 씨에서 시작하자. 그의 실루엣이 그려지는 「(단독) ‘울프 노트’의 잃어버린 페이지」에는 이런 말들이 있다. “자신이 흡혈귀라 주장한 어느 수도사의 자술서, 혹은 그는 자꾸만 뒤늦은 현장 감식을 요구했다.” 그는 분명히 숲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떨어져 있는 두 팔의 주인”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왜 나를 포박하지 않나 /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라며 자기를 죄인으로 확정하기 위해 현장 감식을 요구하는 자. 배가 부를 리가 없는데 배가 부르다며, 분명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라며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라고 묻는 자. 그런가 하면 시 「PMS」의 화자는 이런 울프 씨가 “자기 도덕을 자기에게 증명하려고 끊임없이 혼자 자책하는 사람”이라고 썼다.

그의 실종과 정체를 둘러싼 추문만큼이나, 시적 정황에서 드러나는 것은 ‘분명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뿐, 확실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가 사람을 잡아먹은 흡혈귀(혹은 늑대 인간, 무엇이든 꺼림칙하고 유해한 존재)로 결론짓고 확실한 죄인이 되기 위해 벌버둥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그러니까 추문에 둘러싸이기 전의 사연, 혹은 자책하는 인간이 탄생하는 원리,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시집에서 관심을 가지는 어떤 인물상을 이야기할 때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아무래도 죄의식이다. 「창백한 죄인」과 「미모사와 창백한 죄인」, 그리고 「어떤 봉인」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시를 그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여기에는 어떤 인물상을 그려 내면서 시집의 초점 하나를 제시하는 흐름이 있는 것 같다.

(불타는 도서관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크루소 씨는 어쩐지 냉방기를 켤 수 없었다 전 지구적인 도서관 직원의 죄의식이 옮겨 붙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흙바닥의 펭귄처럼 불우한 느낌이 들었다)


「창백한 죄인」 일부

「창백한 죄인」에서 도서관 직원은 폭염에도 불구하고 열람실 냉방기를 틀어 주지 않는다. “남극에서 빙하가 녹고 있”고 “무엇보다도 지구가 걱정됩니다”라고 말하면서. 도서관에 와서 책을 보기는커녕 저마다 딴짓을 하는 사람들─매일같이 민원을 넣는 크루소 씨를 포함하여─에게 틀어 줄 에어컨은 없다. “사람들은 많은 걸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 자기가 살고 있다고 악착같이 믿고 싶어 할 따름입니다” 이 “사보타주”에 크루소 씨는 어쩐지 불우해진 느낌이 든다. 그다지 가치 있는 사람인 것 같지 않은 마음과 함께, 직원에게서 옮은 죄의식이 그를 “흙바닥의 펭귄”으로 만든다.

이 시에는 “죄의식으로 인해 죄인이 되는 사람”이라는 프로이트의 언급이 주석으로 달려 있다. 그들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의식 때문에 죄인이 된 걸지도 모른다. 이 죄의식의 이미지는 다음 시 「미모사와 창백한 죄인」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너무 예민한 것들 앞에서는 죄인이 된다
숨만 크게 쉬어도 잎을 죄 닫아걸고 가지를 축 늘어뜨리는
미모사
순식간에 나는 난폭한 사람이 되어
사랑해서 미안한 폭력배가 되어
젠장, 알았다고, 너 혼자 푸르르라고
공주병 걸린 년, 누가 죽이기라도 한다니?
내버려두면
어느새 정말 죽어 있는
미모사
순식간에 나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어
화분째 쓰레기통에 처넣고선
너무 예민한 것들을 다시는 상종을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10년 전에 죽은 미모사
그 어떤 미모사와도 바꿀 수 없는 미모사
모든 미모사의 대명사가 된 미모사
이제는 이름도 떠올리기 싫은 미모사
연약한 주제에 까다로운 년
나는 나를 만나지 말기를
부디 네가 나를 마주치지 말기를
나는 내가 없는 우리 집에 놀러 가고 싶고
그래도 남보다는 내 손에 죽었으면 한다
사랑하면 미안한
미모사
방금 내린 눈
잘못 날다가 나뭇가지에 가슴을 관통당한 울새
방금 본 그 눈
녹아버린 것들
날아가버린 것들
자기를 잠가버린 것들
자기를 영원히 잠가버린 것들


「미모사와 창백한 죄인」 전문

“너무 예민한 것들 앞에서는 죄인이 된다”라고 시작하는 이 시는 미모사라는 타자를 경유하여, “사랑해서 미안한 폭력배”같은 화자를 발명한다. 여기에는 어떤 자세─시집 군데군데에서 자꾸만 생각나는─가 있는 것 같다. 죄의식 때문에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모사를 계속 떠올리는.

미모사는 하도 예민해서 조금만 건드려도 스스로를 닫아걸어 버리는 까다로운 식물이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자니 어느새 죽어버려서 “나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 신물이 나서 상종을 말아야지 다짐해도 미모사는 계속 떠오른다. 죄인인 것만 같은 나를 다시 마주치지 말기를 바라지만, 나조차도 “내가 없는 집에 놀러 가고 싶”지만, 그래도 미모사는 “내 손에 죽었으면 한다.” 사랑해서 죄스러운 이 감정은 결말 부분에서 “잘못 날다가 나뭇가지에 가슴을 관통당한 울새”라든가 “녹아버린 것들 / 날아가버린 것들 / 자기를 잠가버린 것들 / 자기를 영원히 잠가버린 것들” 등의 이미지에 대한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어쩌면 미모사 같은 것들. 사랑해서 자꾸만 미안해지는 것들. 그렇게 미안할 것까진 않은데도 떠올리다 보면 어쩐지 불우해지는 것들. 이것을 울프 씨의 마음(좀 순화된)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다음 시 「어떤 봉인」은 “자기를 영원히 잠가버린 것들”이라는 문장에서 출발한 것만 같다.

그때 너는 눈꺼풀을 닫았지
그러자 세계 전체가 일순 물러났다
 
드러나지 않기 위해 너는
하루 섭취 열량의 대부분을 존재하는 데에 쓰고 있구나
존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줄곧 상처 입고 있어서
그 모든 빛과 바람을 복기하거나
묽고 진한 그림자의 엄습을 잊으려 하지만
 
망각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망각
충분히 안전한 기분에 도달할 때까지
꼼짝 않고 선 채 눈을 감고 도망 중
 
도망은 언제나 무엇으로부터의 도망
너는 꿈속에서도 계속 도망하고 있지 않을 수 없었지
 
미모사. 건드려진 속눈썹처럼 바람만 불어도 곧 울 것 같은
미모사. 가장 다정한 햇살의 가벼운 입맞춤에도 혼절하는
미모사. 봉인의 속도가 존재를 대체해버린
미모사. 모든 감각이 통각인
미모사. 말할 수 없는 고통은 말하지 않을


「어떤 봉인」 전문

시집은 두 편의 시에 걸쳐서 ‘미모사’를 구체화하고 있다. “자기를 영원히 잠가버린 것들”은 여기서 “드러나지 않기 위해 […] 하루 섭취 열량의 대부분을 존재하는 데에 쓰고 있”는 미모사로 이어진다. 미모사는 줄곧 입어 온 상처를 잊으려고 거기서 도망치려고 하지만, “망각은 언제나 무엇에 대한 망각”이며 “도망은 언제나 무엇으로부터의 도망”이기 때문에 잊고 피하려는 그 대상은 계속해서 선명해진다. 그래서 미모사는 죄다 통각인 감각을 닫아 걸고 어떤 봉인 상태로 접어든다.

여기서 미묘한 포인트가 생긴다. 앞서 「(단독) ‘울프 노트’의 잃어버린 페이지」의 마지막에서, 론 울프는 이렇게 말한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할 건가?” 「미모사와 창백한 죄인」에서 미모사에 대한 죄책감을, 그러니까 론 울프의 시선을 그려내고, “잘못 날다가 나뭇가지에 가슴을 관통당한 울새”나 “자기를 영원히 잠가버린 것들” 같은 문장을 통해 「어떤 봉인」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이 생기는데, 「어떤 봉인」의 미모사 이미지에 어쩐지 론 울프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왜인가. 추문에 둘러싸인 론 울프. 다가서면 수축하는 이미지의 론 울프. 영원히 봉인되어버린 론 울프.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리기보다 몸을 웅크려버리는 미모사-론 울프, 이 귀여운 소극성.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보충이 필요하다.

훔친 골프채로 골프를 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치지 않았다 아무 데서도
일인 시위를 하지 않았다 청와대 신문고에
호소문을 게시하지 않았다 노동위원회에 부당 노동 행위로 사측을
제소하지 않았다 노조에
가입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자활센터에
등록하지 않았다 사장 집 현관 앞에서
어둠이 오기를 기다려 꿀밤을 때리고 달아나지도 않았다 중고 외제 골프채를 팔아
중고 외제 차를 사지 않았다 욕을
하지 않았다 메롱을 하지도
않았다 시민단체를
찾지 않았다
불법적 행위에 합법적 대처는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냐?
소리치지도 않았다
 
왜 안 그러셨습니까?
 
그런 건…… 어떻게 생각해내는 거죠?
 
세상에는 덜 치명적인 방법으로 복수하고 싶은 억울하고 몹시 내성적인 사람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가 울프 씨의 언제 적 모습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단독) 아마도, 울프 씨?」 일부

무력감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소극성. 여기에는 야성을 잃고 중성화된 고양이의 모습이 있다. 밖을 탓하기보다 안쪽으로 수그러드는 미모사, 남을 찌를 무기를 어떻게 생각해내는지 알지 못하는 미모사의 모습이 있다. 죄의식 때문에 어쩐지 불우해지는 자들, “덜 치명적인 방법으로 복수하고 싶은 억울하고 몹시 내성적인 사람”들의 모습, “자기를 영원히 잠가버리”곤 하는 자들의 모습, 종종 추문에만 둘러싸일 뿐 제대로 만나기는 쉽지 않은 론 울프들의 모습이 있다.

시집은 론 울프의 죄책감을 두 가지 다른 방향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 같다. 하나는 죄책감을 갖는 자의 안에서 미모사 같은 존재들을 바라보는 시선이고, 하나는 죄책감을 갖는 자들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그려내는 시선이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에서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할 건가?”로의 전환. “모든 미모사의 대명사가 된 미모사”처럼, 론 울프는 모든 론 울프의 대명사다. 『울프 노트』는 그러니까 ‘론 울프적 인간’을 기록한 보고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미모사를 계속 생각하는 자들이면서, 동시에 미모사 비슷한 자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집의 어떤 부분은 그들을 복원해내려는 장면인 듯하다. 「개밥바라기」, 「편도선염을 앓는 벙어리 신神의 산책로」, 「이즈음의 신경증」 같은 시들을 이쯤에서 떠올린다.

“멀어서 아름답고 / 멀어서 쓸쓸해진 당신이 / 무언가 참고 있는 것만 같다고” 「개밥바라기」의 화자(아마 말그대로 개밥을 바라는 강아지 같기도 한데)는 말한다. “죽어가는 매미의 마지막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 안에서 어떤 위태로운 자의 이미지가 환기된다. “그가 참고 있는 것이 / 웃음인지 울음인지 비명인지 / 분간할 수 없”다. 화자는 “입술도 목소리도 없는 그가 / 내게 모자를 건네주려는 순간”을 놓쳐버리고 만다.

산책로에는 상상보다 많은 것들이 있다. 그중에 「편도선염을 앓는 벙어리 신神의 산책로」의 ‘당신’은 고양이에게 혀를 도둑맞은 벙어리 신을 만난다. 당신은 당황해버렸고 “등 뒤의 숲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거라 믿”으며 돌아선다. 그래서 당신은 오늘 밤 안도할 것이지만, 여전히 벙어리 신은 “어제 젖은 상수리나무 아래 / 이마의 혹을 쓰다듬으며 / 우연히 마주친 당신의 이름을 발음해보려 / 밤새 낑낑거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쉽게 돌아서면서, 그들을 억압해온 것 아닐까. 「이즈음의 신경증」의 수찬이의 형처럼.

지난겨울, 계양대교 위에서 구조된
수찬이의 형은 군대에 갔다
수찬이에게 형이 있었나? 늘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귀여운 수찬이에게 그런 잉여로운 형이 있었나?
구조대원들이 다리 위에 도착했을 때
수찬이의 형은 뛰어내리진 않았다 죽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
너무 추워서 난간에서 손을 놓쳤을 거라고
녀석은, 낮술에 취해 붉은 눈으로 떨고 있었다고
재수를 했는데도 대학에 떨어진
수찬이의 형은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 꽁꽁 언 손을 놓쳤을 거라고
 
수찬이에게 형이 있었나? 귀여운 수찬이에게
그런 잉여로운 형이 있었나?
수찬이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자전거를 끌고
승강기를 타고 내리고
얼굴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는다
참, 수찬아, 너에게 형이 있었니?
네, 군대에 갔어요
수찬이의 가족은 드디어 수찬이의 형을 처치했구나
수찬이의 형은 드디어 자기를 처리했구나
 
죽고 싶으면서 죽지는 않는 이런 단골들이 동네마다 있고
수찬이의 형은 군대 간 덕에 그런 단골이 되지는 않았는데
군대에서는 시도와 동시에 골로 가기 때문에
단골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군대에는 구조대가 있으니까
물론…… 구조대는……
구조라고……?
 
썅!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이즈음의 신경증」 전문

“죽고 싶으면서 죽지는 않는 이런 단골들”. 쉽게 처치되고는 하는 존재들. 그들은 세계에서 누락되어 있다가 어딘가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맨홀에서 갑자기 마주치는 신神(「만화방창」─아마 벙어리일 것이다)처럼. 내일은 어디에서 피가 터질지 모르는 곳이 지금의 지구다. (「PMS」)

그렇다면 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는 “모든 가상을 제거한 나의 진심”을 쓰려 한다. 그들─혹은 세계에 관한 일체의 허위를 벗기고. 「PMS」를 읽는다.

지난밤의 불길한 꿈에 관해서는 쓰지 않겠다
온갖 새로운 소식과
심금을 울린 독서나 흥미로운 정치
발음하기만 해도 우리를 취하게 하는 천사 따위에 관해서도
내일의 내가 읽으면 힘이 빠질까 차마 쓰지 않았던
하지만 나를 너무 자주 방문해서 기를 쓰고 도망해야 했던
모든 가상을 제거한 나의 진심, 어쩌면
이것은 너무 오래 돈 지구의 무의식
 
[…]
 
점점 더 난해한 시를 쓰면서 해석될까 봐 떨고 있는 시인처럼
고통이 윤리의 증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어리석은 날들을 수정해보려고
수정해보려고
 
앞으로도 누군가는 자기가 가지지 못한 집과 차에 불을 지를 것이다
시가 멸종되고 시의 자랑이었던 광기가 현실 속에서 벌어질 때 우리는
경악할 것이다─시의 실제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한 사람쯤은 깨달으면서
설탕으로 만든 성상에 달라붙은 개미 떼처럼
[…]
 
성상은 여러 형상을 하고 있지만 결국 자기 얼굴과 흡사하다
자기 도덕을 자기에게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혼자 자책하는 사람
─사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만 죽어버려라(울프 씨, 당신 말이야, 하긴, 당신은 실종됐지)
자기 미학을 모두에게 증명하려고 끝끝내 아무 가치판단도 하지 않는 달변가
─오늘 점심에 끓인 쇠고기뭇국에서 풍기는 숙주나물 냄새가 열 배는 더 미학적이다
 
[…]
전혀 정치적이지도 미학적이지도 않은 일상의 대부분과
오로지 미학적이며 정치적인 나의 작은 서재와
춘분 지나 높아진 태양 아래 아직 서늘한 바람 속을 흔들리며
돌보아주지 않으면 꽃봉오리가 맺히지 않았을 수국과 카네이션
열매가 없는 수국과 카네이션
 
당연한 것은 아무 데도 없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 순리인
너무 오래 돈 지구의 무의식─쉬고 싶어
하던 대로 하고 있지만 쉬고 싶다 지구는 생리 전이다 내일은
어디에서 피가 터질지 모른다 정치도 미학도 위안이 안 된다


「PMS」 일부

사실 다 제쳐 두고 쉬고 싶었다는 진심, 그 안일함. 시인은 통렬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윤리라는 것은 고통만으로는 담보되지 않는, 생각보다 만만찮은 것이었다. 돌이켜보건대 그간 시는 설탕으로 만든 성상 같은 것이었다. 정치적인 것에 대한 강박, 윤리적인 결벽 때문에 자책으로 빠져버리는 한 편이 있고 아무것도 판단하지 않고 유보하면서 그걸 미학이라고 포장해왔던 한 편이 있다. (첨언하자면 이 구절은 울프 씨에 관한 질책이나 가치판단이 아니라, 최소한 시인에게는 그런 미모사의 자세는 아무래도 미진하다는 이야기 정도일 것이다)

일상은 정치적인 것이나 미학적인 것으로 풀 수는 없는데─얼마 전 문단의 랑시에르 열풍이 떠오르는 대목이다─시인의 서재는 쓸모없이 미학적이고 정치적이기만 하다. “열매가 없는 수국과 카네이션”같은 것들. 내일 어디서 피가 터질지도 모르게 PMS를 앓는 지구에서 그런 것들은 위안이 되지 않는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시인이 발명한/하려고 시도한 제3의 길일 것이다.

3. 아름다움은 협잡에 대해서는 늘 볼셰비키다

고독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론 울프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사랑과 노래에 대한 시가 끼워진 것을 아무래도 지나칠 수 없다. 어쩐지 그런 문장들에 기대고 싶어진다. “작고 단단한 / 아주 괜찮은 사람들의 연방聯邦”의 가능성에, “공통의 꿈, 그 색채와 음향의 세부細部”에, 그렇게 도래할 “둘의 비약과 진화”에. (「둘의 진화」)

아름다움은 협잡에 대해서는 늘 볼셰비키다. (「프랜차이즈의 예외적 효과에 관하여」)

노란 나무가 아스팔트 위에
왈칵
노랑을 토해놓았다
 
당신은 불붙은 숯을 깨물고
당분간 농담을 하며 견디고 있지만
 
마지막 인간이라는 피로와 자각 속에서
가능한 한 명백한 농담을 거듭 각오하느라
 
우리는 순식간에 모이고 또
순식간에 흩어진다, 그렇다면
 
당신은 나날의 햇볕을 미분하여
작은 기쁨들을 발명해야 하지만
 
그것은 막대한 노동이지만
 
그 작은 기쁨들에
당신도 모르는 악마가 숨어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자주
당신은 당신의 적이지만
 
비유 속으로 풍자 속으로 환상 속으로
이제 더는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어째서 모든 진심은 이토록 난해한지
사랑은 가장 큰 모욕과 근친인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너무 무성해진 화분을 솎으며
손에 묻은 풀의 피를 다른 풀잎에 닦으면, 불현듯
 
그 모든 농담이 익어서 진담이 된다는 것을
이 저임금의 거대한 조롱 속에서, 여기
 
바람 맞은 노란 숲이
왈칵
어마어마한 노랑을 토해놓았다
 
우리의 안부는, 아직
일종의 돌림노래이지만
 
우리는 순식간에 흩어지고 또
순식간에 모인다, 그렇게


「돌림 노래」 전문

농담으로 생을 견디는 마지막 인간들, 불붙은 숯을 깨문 자들. 그런 우리는 너무 순식간에 모이고 흩어져버려서, 햇볕을 미분하듯 작은 순간들에서 기쁨을 발명해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막대한 노동”이고 악마가 도사릴 수도 있는 일이며 “당신이 당신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 쉽지는 않다. 순간의 기쁨들은 보장되어 있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일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모든 진심은 난해하기만 하고 사랑마저도 금방 모욕이 되어버리는 마당에야. 하지만 “비유 속으로 풍자 속으로 환상 속으로 / 이제 더는 도망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생각해보건대, 그래서 생각해보건대, 협잡과 조롱 속에서 “그 모든 농담이 익어서 진담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순식간에 모이고 흩어지는 우리는 돌림 노래처럼 서로 쉽게 만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순식간에, 흩어졌다가도 다시 모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노래에 계속해서 귀 기울인다면, “누구의 것도 아닌, 하지만 귀 기울일 때에는 온전히 자기 자신인 지독한 生”(「간밤, 안개 구간을 지날 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동네 사람들도 불신을 적립할 줄 알아 아무도
현금으로 돌려주지도 소멸되지도 않는 포인트는 가끔
다른 용도로 쓰이지 어마어마하게 다른 용도로
용도를 초과하는 동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어떤 서두를 쓰기 시작한다
 
진짜 식단이 필요해 모든
별들은 폭발하면서 태어난다 그걸
내파라고 불러야 하나 외파라고 불러야 하나 최초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움은 협잡에 대해서는 늘 볼셰비키다


「프랜차이즈의 예외적 효과에 관하여」 일부

그런 돌림 노래 속에서 우리도 모르게 쓰게 되는 어떤 서두. 폭발하면서 태어나는 힘. 이 아름다움은 어떤 협잡에 대해서도, 중성화된 고양이나 미모사가 아니라, 볼셰비키일 것이다. 여기에 론 울프들의 행로가 있다. 귀 기울인다면, 귀 기울인다면, 우리는 볼셰비키적인 서두를 쓰게 될 것이다.

4. 꼬마 해마의 기록

「흰수염고래와 그의 노래」로 마무리해야겠다.

울지 마, 흰수염고래
당신과 당신의 노래 사이에 모순이 없지 않지만
당신이 멸종된다면 당신의 노래도 멸종될 것이다
오늘 꼬마 해마는 이 모든 것을 서둘러 기록해두었다


「흰수염고래와 그의 노래」 일부

『울프 노트』는 그러니까 추문 속에서 희미해지는 론 울프들에 관한 기록이다. 그들의 노래가 어디까지 나아갈지를 상상하며 글을 맺는다. 늑대들이 멸종하지 않기를 바란다.

파상
studien618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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