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석학과 존재론” (1)  

해석학은 오랫동안 더 나은 ‘읽기’를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어왔다. 그것은 성경의 정합적이고도 완결된 해석을 위해 도입되었으며, 현대적인 신학을 구상한 슐라이어마허의 공헌에 의해 고도로 체계화되었다. 그러나 해석학의 ‘철학적 전환’ 이후 해석학은 그 내용과 의의에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해석학이 단순히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진리 구성 행위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 일대 전환은 해석학의 방법론적 세련화를 넘어서는 것이다. (해석학이 그 방법론의 측면에서 발전한 것은 슐라이어마허 까지의 기독교적 해석학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철학적 전환은 해석학의 본질적 구성 요소를 바꿔 놓았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변화는, 텍스트에 대한 해석학적 이해가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텍스트에 대한 면밀한 ‘읽기’는, 대상에 대한 인식론적-존재론적인 성찰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존재론과 해석학은 서로를 읽어내면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해석학을 구성하는 데에 기여한다. 해석학의 철학적 전환은 곧 철학의 해석학적 전환이기도 한 것이다.

 본고의 주된 목적은 이러한 해석학의 철학적 전환을 통해 정초된 새로운 존재론적 이해, 즉 해석학적-존재론적 대상 이해의 내용과 구조를 해명하는 것이다. 나는 해석학의 철학적 전환은 다양한 양상으로 이루어졌지만, 그러한 전환을 견인한 존재론적 이해의 내용들은 단일한 양상을 띄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 주장은 철학의 해석학적 면모를 누구보다 극명하게 보여준 가다머와 하이데거의 대상 이해를 간략하게나마 비교해보면서 논증될 것이다. 지면의 한계를 의식하여 인용을 최소화했으며, 간결한 서술을 무엇보다 우선했음을 앞서 밝힌다.

 현대 철학에서 해석학을 본격적으로 존재론적 이해와 결합시킨 사람은 단연 하이데거와 게오르그 미쉬다. 그중에서도 하이데거는 딜타이가 불완전하게 끝맺은 해석학의 철학적 전환을 완성하고 정초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이데거는 이른바 ‘해석학적 진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타난 존재자 자체는 자기 자신에 의거해서 존재하는 ‘그대로’ 자신을 표시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 존재자’는 현재 존재하는 그대로, ‘스스로’가 그 진술에서 제시되고 발견된 대로 자기동일성에 있어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와 시간)

 해석학적 진리 개념에서 존재자 자체는 개별 현존재에게 ‘발견된 그대로’ 존재하지, 다른 존재 양태를 지니지 않는다. 요컨대, 모든 존재자는 현존재 자신이 발견한 양태 그대로의 진리값을 지닌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진리라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각 현존재가 발견한 각각의 존재자가 바로 존재자의 ‘진상’에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간략히 요약된다.

  • 존재자(A)는 개별 현존재들에게 각기 다양하게 이해된다(a1, a2, a3…….)
  • 다양한 이해들은 서로에 대한 내용의 질적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존재자(A)에 대한 것이다. 지성은 이를 알 수 있다. (아포판시스)
  • 존재자(A)는 오로지 개별 이해(a1, a2, a3)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 존재자의 진상은 개별 이해 모두에 상응한다. 즉 모든 개별 이해는 그 질적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 자체로 진리로서 승인된다.

 존재자(사물)는 오로지 개별적인 존재 이해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따라서 존재자는 애초부터 다양한 양태로 우리에게 인식될 진대, 하이데거는 그 각각의 나타남이 모두 ‘사물 자체’의 매개 없는 직접적 현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이데거의 진리 개념을 어렵지 않게 해석학적 실재에 적용시킬 수 있다. 이는 가다머가 일찍이 수행한 작업이기도 하다. 텍스트(A)를 보는 다양한 관점들(a1, a2, a3…..)이 물론 존재한다. 개인들은 각자의 관점으로 텍스트를 해석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텍스트에 대한 것이고, 텍스트 이해에 기여한다. 텍스트의 진리는 오로지 이러한 개별 이해들의 연속과 대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지, 특정 해석의 절대화를 통해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이해된 해석학에서 ‘지성과 사물의 일치’라는 기존의 진리관은 의미가 없다. 텍스트는 어떤 관점에서 해석되든 그 자체로 자신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진리는 내용이 아니라 텍스트와 관점들 간의 관계를 정식화하는 구조와 관점들의 연속적인 이행에 있다. 탁월한 해석은 탁월한 내용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층위들을 하나의 흐름 속에서 모아주는 탁월한 종합에 다름아니다.

 가다머의 해석학에서 대상(텍스트)은 (하이데거의 존재 이해를 연상시키는) 해석자의 ‘지평’ 속에서만 드러난다. 가다머는 ‘해석 행위’ 자체의 해명에 집중하면서, 해석이라는 사건은 해석자의 유아론적 자기 반복도 아니요, 텍스트의 암호 풀이도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해석은, 텍스트라는 구조물과 그것을 탐사하는 해석 지평간의 대화라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한 해석자가 텍스트를 읽으면서 감지하는 다른 해석자의 해석이다. 텍스트는 변치 않고 있을 지언정, 해석자의 지평은 다른 지평과 관계를 맺으면서 계속 생성하기 마련이다. 좋은 해석이란 텍스트(대상)를 해석함에 있어 다른 지평의 존재를 감지하고 그것과의 대화를 통해 텍스트의 보다 다층적인 면을 드러내는, ‘대화하는’ 해석이다. 가다머의 입장을 거칠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해석은 텍스트가 해석자의 지평을 통해 현실화하는 사건이다. 이를 ‘만남’이라고 한다.
  • 상기한 현실화는 무매개적이고 즉자적인 현실화이다.
  • 해석자는 다른 해석자의 지평을 알 수 있으며, 자신의 지평을 타자에게 제시할 수도 있다. 이를 ‘대화’라고 한다.
  • 텍스트는 다양한 지평을 통한 현실화를 거칠 때에 풍요롭게 표현될 수 있다.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텍스트는 그러한 다양함을 모아주는 분기점이며, 단일한 텍스트 안에서 모아들이는 해석들은 서로 끊임없이 대화한다. 여기서 텍스트와 해석이 각기 단일성을 지닌다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1) 대상(텍스트)은 다양한 해석으로 표현될 진대, 그 자체로는 단일하며, (2) 각각의 해석 또한 대상의 즉자적 현실화라는 점에서 단일하고, (3) 텍스트와 해석 모두 같은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관계 안에서 단일하다. 또한, 하이데거가 해석의 다양함과 그 다양함을 종합하는 대상의 단일성을 밝혀냈다면, 가다머는 다양한 해석들 간에 벌어지는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겠다. 해석학의 철학적 전환은 이처럼 단일한 양상 속에서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전개되어온 것이다.  

하니
marks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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