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살아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다. 혹은, 기억한다는 것은 죽음 이후에 여전히 살아간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유디트 헤르만이 연작 소설집 『알리스』에서, 특히 마지막 단편인 「라이몬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억은 의식이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바로 이 점이 베르그손이 『물질과 기억』에서 얘기하는 핵심 중의 하나가 아니었던가. 차라리, 우리는 늘 자신의 기억을 산다vivre sa mémoire. 오늘의 우리 자신이, 이제는 사실이 된 사건들이 남긴 ‘흔적’들인 그러한 사건들에 의해 지탱된다는 사실 자체를 기억 개념이 가리킨다.

“라이몬트가 죽은 뒤 알리스는 그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치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팔고, 내다 버렸다. 간직하기도 했다. 일종의 발굴 작업이었다. 지층들을 노출시키고, 다양한 색과 물질을 드러내고, 시대를 분류하는 일. 마지막에 가서는 라이몬트가 죽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더 건져 낼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작업은 끝이다. 그렇게 끔찍한 일은 아니었다.”1 이렇게 시작하는, 그리 길지 않은 이 단편은 알리스가 남편 라이몬트의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모습을 조용하고 담담히 그려낸다. 라이몬트의 물건을 정리하고, 큰 미련을 두지 않고 치우다가, 문득 재킷 주머니에서 오래된 빵 조각 같은 것과 마주치고는 흔들린다. 더는 라이몬트가 없는 일상을 살면서 “알리스는 라이몬트를 날마다 보”곤 한다.2 수없이 많이, 길거리의 다른 사람들을 순간 순간 라이몬트로 착각한다. ‘라이몬트 없이 지내는 최초의 날과 주간과 달. 그렇게 선명하고 반짝이는 날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알리스는 아마도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3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알리스는 “현관문 앞 계단 위에,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 담배를 피우고 있”는 라이몬트가 실은 라이몬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을 때 “실망하지 않”4는다. 그렇게 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죽음 이후에 여전히 살아가는 법, 기억을 살아가는 법을. “마침내 산다는 것을 배우apprendre à vivre enfin”듯이.

2.

생존survie은, 데리다가 말했듯이, “기원적인 생”이다. 생존은 “산다는 것에도 죽는다는 것에도 덧붙여진 것이 아니”며, 그것은 생을 가능케 하는 가장 근원적인 조건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생존은 이중적으로 그러하다. 일단 우리는 살아있다. 생존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또한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생존은 죽음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어떤 것이다.

데리다는 그의 마지막 텍스트(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두 일시적인 집행유예로 인하여 살아남은 자들이다”라고 말한다. 생존survie은 유예sursis라는 것. “삶은 살아간다는 것이고 삶은 생존이다.” “생존한다는 것은 보통의 뜻에서는 계속해서 살아간다는 것이지만, 또한 죽음 이후에 산다는 것이다.”5 우리말에서 역시, 생존한다는 것은 살아있어서 계속 살고 있다는 뜻(‘생존 작가’라는 표현에서 보듯이)인 동시에 살아남아서 살아있다는 뜻(어떤 사건의 ‘생존자’라는 표현에서 보듯이)이기도 하다.

생존 개념은 삶의, 그리고 생명의 실존과 우연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편으로 삶의 동일성과 수동성을 보여주는 식으로 두 번에 걸쳐 오늘날 우리가 처한 폭력의 상황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삶은, 살아남기부터가 힘든 것인데 그런 한에서 오직 살아남는 것에 매여 있고 마는 것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세대가 처한 문제의 가장 첨예한 지점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내줄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여성에 대한 일련의 범죄들 이후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기에 살아있)다’는 선언이 이어지는 한편 여전히 ‘먹고 사는’ 일, 경쟁에서 ‘살아남아’서 한 몸 건사하는 일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오늘 우리들의 문제를 말이다.

3.

글을 쓰던 중에 외조모의 부고를 받았다(6월 8일 저녁). (‘공교롭게도’라고 말하는 게 옳은 일일까?) 그 작별은, 어떤 의미에서, 진즉 일어나고 있어왔던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원망과 후회와 무력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미. 나는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나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사람은 도대체 어떤 기분인 걸까. 나는 내가 짐작할 수 없는 것을 그저 문장화하는 데 그칠 뿐이다. 전화를 받기 전까지 내가 읽고 있던 것은 공교롭게도 바르트의 『애도 일기』였다. 그런데 어머니를 잃은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어머니이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그분의 아버지는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불과 몇 개월 남기고 죽었다.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 최초로 법적인 투쟁을 통해 동양척식회사가 수탈해간 토지를 반환받는 데 성공한 소송을 이끈 주요 인물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다방면으로 계속 항일운동을 전개했고, 특히 학교를 세워서 초대 교장을 역임하는 등 신학문 교육에 힘썼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는 막내 딸이었으므로 열다섯 살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래도 자신의 아버지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해서 후에 자식들에게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막내 딸은 집안이 특출나진 않지만 아주 예의 바르고 뚝심 있는 청년과 결혼했다. 채 몇 년 되지 않아, 겨우 스물 몇 살 나이의 청년은 징집되었고, 전투 중에 그의 발 밑에서 지뢰가 터졌다. 온몸에 화상을 입었으나 목숨을 건져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여러 자식들을 낳았고 한참 뒤에 첫 아들인 내 외삼촌과 내 어머니를 낳았다. 내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를 아주 지혜로운 여성으로 생각했다. 갑자기, 얼굴에 주름은 져 있고 머리가 회색으로 새긴 했어도 아직 머리채가 풍성하던 때, 내 어머니의 어머니가 비취색 비녀를 머리에 찔러넣던 것이 생각난다. 다른 순간에, 어린 나는 멋모르고 그 비녀를 쥐고 책상에 두들겨 댔던 것도 같다. 아, 그리고 식혜. 제사 음식을 잘 하는 사람이었지만 무엇보다 식혜를 잘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간간히 서울로 엿기름을 보내주었고,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배운 방법으로 집에서 직접 식혜를 담갔다. 엿기름뿐이었던가, 완도 바다에서 잡힌 싱싱한 생선과 해산물들을 자주 보내주었으므로, 어린 나는 왜 생선이 비리다고들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풍족히도 먹었다. 자신 또한 막내 딸이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막내 딸인 내 어머니를 예뻐했다. 한편으로는 아들에 목 매는 사람이었다. 내 어머니의 바로 손위 아들인 나의 외삼촌은, 여섯 번의 출산만에 얻은 아들이었다. 아들 하나를 보고 사는 사람, 그 시대에 많았던 그런 사람이기도 했다. 그 아들이 자식들 중에 제일 ‘출세’한 사람인 것도 맞다. 바로 그 점만 빼면, ‘옛날 사람’ 같지 않고, ‘고리타분한 노인네’는 더더욱 아닌,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이 ‘지혜로운 사람’은 내게 참말로 “장하다, 내 아들”이라고 말했고 곧바로 “사람을, 사람 위에서 내려다 보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일꾼을 부릴 때면, 자식들은 보리 섞인 밥을 먹여도 일꾼들은 흰쌀밥으로 끼니를 대접하고 담배도 그네들이 보통 피우는 것보다 한 등급 비싼 것으로 사주고는 일을 맡기던 양반. 내가 어렸을 때, 나 스스로는 기억할 수도 없게 아기였을 때, 그 사람은 너무나도 예쁘장한 손주를 등에 업고 아기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동네를 괜시리 걸어다녔다. 생전 남의 흉을 본 적 없는, 자신의 양반 아버지만큼이나 점잖은 ‘양반’이, 아기가 예쁘다는 말을 안 하고 지나친 동네 사람에게는 썩을 것이라고, 눈이 삐었다고 욕을 했다. 그분이 자신의 아껴 마지않는 아들의 아들을 더 아꼈는지, 막내 딸의 아들인 나를 더 아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추측건대, 그래도 전자였지 싶다. 아무렴 어떤가. 내가 그 분을, 내 어머니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뵌 것은 아직 제대하기 전이었다. 근무에 지장이 없도록 주말에 휴가를 쓰고 목포에 갔다. 몸이 많이 마르고 병약해져 있었다. 막내는, 내 어머니는 어렴풋이 알아본 것도 같은데, 잘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분이 나를 결국 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렴 어떤가. 왓따왓뜨, 잘했다, 내 아들. 할머니의 그 목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아마도 기억의 관계는, ‘이중의 조건’보다 수월한 조건에 의해 이어져 있는 끈이리라. 흔히 관계는 — 이런 말을 할 때 특히 염두에 두는 것은 연인 관계와 같은 것들인데 — 양쪽이 모두 관계 맺으려 해야 성립되며, 한 쪽만이라도 단절하기로 마음먹으면 더 이상 성립되지 못한다고들 한다. 관계는 이중의 조건, 즉 양쪽의 의지나 기꺼움, 애정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이라고. 그러나 기억의 관계는 사실상 어느 한쪽이 기억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한쪽 항의 결핍이나 부재와 무관하게 ‘살아있다’.

4.

장례식장에 있을 때, 영정 사진 앞에서 타고 있는 향을 보거나 흰 국화가 쌓여가는 것을 볼 때, 가족 친지들과 그들의 친구들, 동료들, 지인들이 찾아올 때에도 나는 일이나 임무를 맡은 기분이었고 다른 어떤 것도 심히 실감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용한 곳에서 홀로 그분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는 빈소에서는 한 번도 붉혀본 적 없는 눈시울을 달래려고 애쓰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사회적 제도에 다름 아닌 ‘식式’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남은 생에 걸친 살아있음/살아나감에 의해서 우리보다 앞서 죽은 이들을 장례 지내는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데리다가 생에 “기원적인 것”이라고 했던 생존을 기억으로 바꿔 놓는다. 어떤 의미에서, 살아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나는 의식적인 기억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상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기억이라기보다는 망각이 아닌가? 기억보다 망각이 더 의지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이기도 한 기제가 아닐까?

한강의 단편 「작별」의 첫 대목은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케한다.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6 그러나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조건(실존)이 무엇인지를 묻는 데 그치는 소설이 아니다. 이 텍스트는 “살아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는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버티고 있다는 것, “조금 더 생존할 수 있”7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일이라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일, 기억하는 일이고… “사력을 다해”8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일러주는 것 같다. 주인공의 생이(삶이 그리고 생명이) 글자 그대로 ‘녹아내리는’ 순간들 속에서, 살아있기 위해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기억한다.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9라는 물음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살아있는 건지’라고도 들린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들을, 현수 씨와의 일들, 아들 윤이와의 일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더 기억하려고 애쓴다. “자신의 삶이라고 불렸던 몇십 년의 시간에 대해” 필사적으로 “생각”10하려 한다 — “기억을 좀더 되찾게 될지도 모르”11므로. 눈사람이 된 그녀의 몸이 녹아내리는 마지막 순간, 그녀는 “사력을 다해” 뒤를 돌아본다.

우리는 생존이라는, 생의 바닥을 이루는 기원 위에 놓여있다. 생존 개념 자체가 이미 이중적이었다. 생존은 살아(만)있음, 살아남음인 동시에 살아남기이다. 그것은 그저 주어진 조건과도 같은 것(존속)인 동시에 그 조건을 사수하고 버티는 일(연명)이다. 그런데 생존이란 것이 삶vie 이상(sur-)에, 초월에 놓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존은 우리가 ‘그저 생존함’을 넘어가야(sur)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 그러므로 나는 데리다의 마지막 작업을 물려받아 바꿔 써내려가면서, 생존survie에서 sur를 두 번 겹쳐 읽는다(sur-survie). 생존 개념이 이중적인 것과 거의 동등하게 기억 개념은 이중적이고, 이제 우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이지만, 단지 살아남기만 한, 목숨을 부지하고만 있는 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데에서, 관건은 살아나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애도는 늘 오늘에 위치하여 재발명된다. 기억은 기억된 내용의 전달에 그치지 않고(단지 그뿐이라면, 기억은 내용을 가진 기호이거나 매개체vehicle라면, 우리는 ‘기억하다’라는 동사형을 가질 이유가 없다), 관계로서 삶을 구성한다. 숨이 붙어있듯이 기억이 우리에게 붙어있지만, 그래서 우리는 매일 살아가지만/기억하지만, 그 달라붙은 기억이 각질처럼 쉽게 바스라져 없어지지 않기 하기 위해, 다시 기억하는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삶이란 것이 존속의 의미이며 또한 연명의 의미인 생존에 머물러 있지 않고 거기에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간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기를, 그런 의미에서, 생생하게 ‘살아있기’를 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기억한다는 것이 정신의 어떤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행위로, 글쓰기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드러나는 게 아닐까? 생존을, 기억을 넘어서서 다시 기억하기, 그런 의미에서 쓰기. 나는 여전히, 삶을 텍스트로, 혹은 텍스트 내에서의 텍스트 자신을 쓰기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매일, ‘탁월한 쓰기’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1. 유디트 헤르만, 이용숙 역, 「라이몬트」, 『알리스』, 민음사. 134쪽.
  2. 같은 책. 150쪽.
  3. 같은 책. 147쪽.
  4. 같은 책. 159-160쪽.
  5. Jacques Derrida, 『Learning to live finally』, An interview with Jean Birnbaum, Melville House Publishing, 2007. 번역은 필자 본인.
  6. 한강, 「작별」,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은행나무. 13쪽.
  7. 같은 책. 28쪽.
  8. 같은 책. 55쪽.
  9. 같은 책. 46쪽.
  10. 같은 책. 52쪽.
  11. 같은 책. 53쪽.
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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