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한다’는 말은 대개 수동적이고 항시적인 상태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만약 기억한다는 일이, 허투루 해서는 안 될, 멈춰서는 안 되며 늘 사력을 다해야 할 행위라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행해야 할 책무와 같은 것이라면, 그때 기억한다는 것은 다시-기억하는 일, 또다시, 거듭 기억하는 일이다.

사진 혹은 영상은 기록하지 기억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하는 행위가 아니라 기억된(기록된) 내용이다. 사진이나 영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하지만,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실제로 벌어지는 일을 찍는 이는 ‘이것을 똑똑히 기억(기록)하겠어!’라고 마음먹고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시대의 사건을 대중에게 전하고 후대에 남기는 일일 뿐 행위로서의 기억하기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다시-기억하는 것으로서의 기억하기는 텍스트를 주고받고 나눠가지는 일로써만 가능한 게 아닐까?

2.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을 주시한다는 것Regarding the pain of others』에서 제시하는 것은, 적어도 사진-이미지를 통해서 타인의 고통에 접근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수전 손택, 이재원 역, 이후, 154쪽. 한국어판 제목은 『타인의 고통』이다.)이며, 격렬한 감정은 머지 않아 무뎌지고 만다.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겼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에 포화 속에 갇혔으나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을 쓰러뜨린 죽음에서 벗어난 모든 군인들, 모든 언론인들, 모든 부역 노동자들, 독자적인 모든 관찰자들이 절절히 공감하는 바가 바로 이 점이다.”(같은 책, 184쪽.)

전쟁과 같은 거대한 폭력이 오늘도 있으며, 타인의 고통이 있다. 그것을 완벽하게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늘 충격과 비통함의 감정 상태 속에서 살 수만은 없다고 할지라도, 다만 연민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손택은 말한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같은 책, 154쪽. 강조는 인용자.)

과제숙고해보는 것이지, 단지 사진과 영상 앞에서 그것들을 소비하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이 고통 앞에서 ‘나’의 안전함을 재확인하고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역시 저 고통에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하는 성찰과 기도. 그런데 그 성찰은 무엇보다 하나의 폭력적 사건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그리고 그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인가를 물음으로써 가능한 게 아닐까? 그러므로 그것은 사건의 일어남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추적에 뒤이은 현재로의 복귀로서 가능한 게 아닐까? 여기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애도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것의 영도(零度)가 아닐까?

3.

W. G.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1999)은, 2차대전의 막바지에 독일의 여러 도시가 연합군의 공습으로 인해 완전히 불타고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군인이 아닌)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 도시와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을 독일 사회가 망각해왔고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으며 독일 문학 또한 그 파괴의 참상을 제대로 기억하는 데 실패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동안 이미 전설이 되어버렸고 또 어떤 점에서는 실제로 경탄할 만한 독일의 재건은 적국의 공습으로 초토화된 뒤에 실시된 제2의 과거 청산작업과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노동 실적을 요구하고 얼굴 없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해냄으로써 처음부터 어떠한 회고도 용인하지 않았으며 국민 모두에게 미래지향적일 것을 강권했고, 그들이 겪었던 일에 대한 완전한 침묵을 강요했다. ( W. G. 제발트, 이경진 역, 『공중전과 문학』 18쪽.)

독일 민족이 정신적 삶에서 극심한 혼란을 거의 겪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독일 사회가 과거의 경험을 완벽히 기능하고 있는 억압의 메커니즘에 넘겨주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 억압의 매커니즘은 이 새로운 독일 사회가 모든 것을 박탈당한 폐허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동시에 독일인들의 감정체계 전반에서 그 사실을 완전히 털어버리도록 움직이고 있다. (같은 책, 24쪽.)

저자는 영국이 이 일을 실행한 이유, 그리고 독일이 종전 이후 한 번도 이 학살을 공론화하여 문제 삼지 못한 이유에 정치적인 맥락이 놓여있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이어서, 그 어떤 이도 외면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규모의 파괴 행위였다는 점에서 볼 때, 놀라울 정도로 기록되지 않은 이 기억의 공백에 최소한의 페이지를 써넣겠다는 듯이, (왜냐하면 이 망각을 다루기 위해서는 망각된 이 파괴에 대해 오늘날의 독자가 조금이나마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담담하게 파괴와 죽음들을 서술한다. 그리고 암묵적 금기와 같은 이 재현의 과제(파괴된 독일 도시와 학살된 사람들에 관해 쓰는 일)를, 적어도 ‘시도한’ 작가부터가 극소수이며, 그들 중 대부분도 폭력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신비화하거나 종교적인 해석으로 비약해버리는 등의 함정에 빠져 적절한 애도의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가한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이며, 전쟁 중 극악무도한 범죄를 일삼은 독일로서는 자신이 당한 범죄를 항의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행한 범죄 때문에, 자신이 당한 범죄가 일종의 ‘징벌’로서 생각되었을 뿐 그 폭력 속에서 스러진 사람들이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고 또한 (자신이 행한 범죄만이 아니라) 자신이 당한 파괴까지 한 번에 싸잡아서 ‘치욕스러운, 청산해야할 과거’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잊혀졌다는 이 통렬한 비판은 귀기울여 들어야 할 만한 것이 아닌가.

제발트는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을 고발하면서, 기억해야 할 사건이 있으며 그것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 책(『공중전과 문학』)을 제발트의 전 ‘문학적’ 작품들의 ‘서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러나 이 책은 그가 기억한다는 주제에 탐닉하는 이유를 밝혀주며, 기억함으로써 오늘로 돌아오는 일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말해준다. 실상 제발트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란, 기억함을 주제로 하는 것이면서 또한 그 자체로서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기 위해 분투하는 실천이지 않은가. 『이민자들』(1992)이 그렇고, 『아우스터리츠』(2001)가 그렇다. 1939년, 유대 어린이 호송 작전에 의해 네 살의 나이에 자신의 고향에서 멀리 떠나 영국에 정착하여 자란 아우스터리츠가, 수십년의 세월을 거슬러, 방어적 본능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를 짙은 망각을 거슬러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탐색하는 긴 여정은, 살아남은 자가 살아남은 자로서 기억하고 다시-기억해내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4.

애도는 이중적 과제이다. 그것은 과거에 다다름으로써 현재로까지 이르러야 한다. 닉 캐러웨이가 과거의 사건을 복원하는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닉에게만 개츠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무엇인가가 된다. 닉만이 개츠비를 애도한다. 그만이 개츠비의 장례식에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닉이 개츠비의 죽음 이후로 얻은 환멸을 치유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개츠비를 파멸에까지 몰고 간 사건들을 복원함으로써, 자신 또한 오늘에까지 다시 다다르기 때문이다. 애도는 단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현재 속에 위치하기 위한 노젓기이다. 어떤 의미에서, 애도는 죽은 자를 위한 일이라기보다 오늘의 우리를 위한 일이다. 오늘의 우리를 위해 죽은 이들을 ‘들먹이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애도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으로서as’/’들 속에서among’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의 문제다. 다시 말해 애도는, 우리 속에서 ‘우리’가 폭력적 명명이 아닐 수 있도록 서로에게 서로가 되려는 일이며, 그럼으로서/써 우리이려는 노력이다.

사랑이 단지 감정이나 활동들로 환원될 수 없는, 타자와의 관계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노출되고 스스로의 일부를 내놓아 서로에게 얽혀들어가는 삶의 방식이듯이, 애도 또한 그렇다. 애도는 슬픔의 감정 혹은 슬퍼하는 활동들이 아니다.

애도는, 우리가 어쩌면 그 죽음(들)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으로부터 시작되고 지탱되는 일이다. 그것은 또한 폭력이 묵인되거나 사면되고 심지어는 정당화되는 일에 대한 반대이며 저항이다. 그 어떤 살해됨도 어쩔 수 없는 것 혹은 그래 마땅한 것이 될 수 없다. 애도는 그 누구도 악마화하지 않는 한에서 폭력을 증오하는 성찰이자 폭력의 반복, 재생산에 대한 반대이며 고통이라는 경험에 대한 공감이고 기도다. 그것은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결국은 나르시시즘에 불과하게 되는 고해성사가 아니라 그 어떤 폭력도 정당화하지 않으면서 폭력에 의해 삶을 박탈당하고 사물 — 살덩이 — 로 덩그러니 남은, 끝내는 사물들 속에서 바스라져버린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 기억함으로써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지는 않도록 붙잡고 있는 일이다. 거듭 기억하고 다시-기억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홀로 슬퍼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홀로 슬퍼하도록 두지 말자. 슬퍼해줄 이조차 없는 죽음 또한 그저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채로 놔두지 말자. 슬픔을 나눠갖자. 같이 슬퍼하고 분노하되 그 슬픔으로부터 복수라는 결론을 이끌어내지 말고, 죽은 이를 살해한 자를 악마로 뒤바꿔 놓지도 말자. 슬픔을 그 어떤 것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버리지 말고, 죽음을 ‘가치 있는’ 죽음으로 부르지도 말자. 다만 기억하고 다시-기억하자. — 이것이 애도의 목소리이다.

5.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에 빠진 것이 아닌가? 어떤 이들은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들 모두가 연루되어 있는 폭력의 구조가 살해한 것이나 다름 없다. (이 문장을 쓰며 염두에 두는 것은 사이버 성폭력으로 인해 고통 받다가 결국 삶을 놓아버린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죽음은 애도되기는 커녕 소비되고 조롱받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런 파렴치한 자들을 벌하기는 커녕 묵과하고 있지 않은가? 2014년 4월 16일에 관하여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이제 지겹다’고 말하며 ‘그만 말하라’고 외치지 않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그 사건이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살아남은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하는지를, 충분히 묻고 사유했는가?

어떤 죽음이 누군가에게 수치라면, 그 죽음은 아직 충분히 애도된 것이 아니다. 어떤 죽음이 누군가에게 ‘자긍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들이 속한 공동체를 피해자의 축에 놓고, 그들을 공동의 적에 대한 증오로 결속시켜주는 구심점이 된다면, 그 죽음 또한 아직 충분히 애도되지 않은 것이다. 실패한 애도는 애도가 아니다. 애도는 성공하는 것, 마침내 완성되는 것 또한 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지탱되는 일이다.

애도한다는 것, 그것은 사건에까지 다다름으로써 오늘에까지 이르는 글쓰기, 기억하는 글쓰기이다. 사진은, 매년 돌아오는 4월 16일이라는 날짜는, 그 날마다 뉴스에서 일러주는 ‘n주기’라는 말은 아무것도 애도하지 못한다. 아마도 글쓰기에 이은 글쓰기로써, 텍스트를 주고받고 나눠가지는 일로써만 애도에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살해된 자들이 묻히고 켜켜이 쌓인 땅 위에서 살고 있다. 제발트가 자신의 전 작품들에 걸쳐 거듭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사실이 아닌가? 사건들에 뒤이은 사건들…… 그리하여 마침내 다다르는 바로 이 일어남들, 그것을 우리가 오늘이라고 부른다면, 오늘에 뿌리박고 살고 있는 우리는, 오늘을 있게 한 폭력의 사건들이 애초에 벌어지지도 않았다는 것처럼 살 수 없다. 그 누구도 완전히, 순수하게 떳떳하지 않다. 다만 보다 덜 비겁하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덧붙여서

우리가 기억하여 복원해야 할 것,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은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무심코, 너무나 쉽게, 폭력을 당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망자는 너무나 많은 말들 속에 자신이 담기고 오늘의 담론 속을 혼령처럼 떠돌게 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을까? 망자는 이제는 자신이 잊히기를, 무無 속에 묻히기를, 그리하여 그 어떤 말도 없는 공간 속에서 평안을 누리기를 바라지는 않을까?

우리는 폭력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되, 그 폭력에 의해 희생된 넋을 기리되, 이제는 주인이 없어져 버린 그 이름들은 잊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름의 주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잊어버려야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가 누구였는지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폭력 앞에서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으므로.

거대한 폭력의 구조가 불러오는 죽음들이 있다. 그런데 어떤 이의 이름은 국가나 나서서 그 이름을 박제한다(그 이름을 돌에 새겨 넣고, 기념관의 동판에 새겨 넣고, 심지어는 교과서에도 새겨 넣는다). 또 다른 경우, 망자 곁의 살아남은 이들은 주인을 잃어버린 이름이 여전히 너무나도 많이 말해져서, 그 죽음이 포르노그라피처럼 소비되고 또 소비되는 까닭에 고통 받는다.

이름을 기록함으로써 넋을 기릴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이름[名]이 그의 죽음으로 인해 ‘명예名譽로운 것’이 되었으며, ‘그러므로’ 그의 ‘죽음이 명예로운 것’이 되었다는 관념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폭력이 일으킨 어떤 죽음을, 죽음이 앗아간 어떤 사람의 생生을, 그 이름을, 명예로운 것으로 여기는 관념 혹은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관념은 둘 다 제각기의 방식으로 그 생을, 죽음을, 그 이름을 이데올로기를 위한 것으로 변모시켜버리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때문에, 손택은 연민을 넘어서서 슬픔을 공감하기, 애도하기가 사진-이미지들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 아니었던가. 익명으로 기억하기. 폭력을 기억하되 그 폭력으로부터 “나는 그런 재앙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안도를 주지도 않으며 그 폭력을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리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기억의 작업. ‘문학적’ 텍스트가 할 수 있으며, 또한 해야하는 것으로 주어진 하나의 영역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단현
danhyun01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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