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하라는 이름으로 지평에 첫 걸음을 내딛는다. 첫 걸음이니만큼 조금은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말을 골라보려 한다.

노을 지는 시간을 사랑한다. 감상적인 이유도 있겠으나 여기서 말하려 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낮과 밤의 경계가 흐트러지는 시간. 옳고 그르다고 굳게 믿어왔던 것들에, ‘과연 그럴까?’라는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순간. 황혼녘은 하루에 단 한 번뿐이지만, 동시에 매일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세계에 최초의 노을이 나타난 이래로 쭉 지속되어 왔고, 이 세계가 존속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초의 노을이라는 뜻을 담아 초하(初霞)라는 이름을 지었다. 끊임없이 경계를 허무는 시간 중에서도 가장 첫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제의 노을은 오늘의 노을과 다르고, 오늘의 노을은 내일의 노을과 또 다르다. 매일의 노을이 곧 최초의 노을이기도 하기에, 나는 내가 시도하는 경계 허물기마다 매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컨대 지난여름 나는 이렇게 썼다.

그리하여 저는 이제당신의 글을 한 편의 연대기(連帶記)’라 부르렵니다. (상처 입고 부대끼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연대해가는 지금여기의 서사이자차별에 맞서 온 자들의 모든 연대의 역사가 기록된 연대기(年代記속 하나의 서사로 읽으렵니다.”

그런 글을 쓰려 한다. 경계를 허무는 글. 이른바 당연했던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야기하는 폭력이 세운 경계에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하는 글. 경계로 밀려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선 자들의 이야기를 파고들고, 세계와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차별과 혐오라는 이름의 견고한 벽에 틈새를 짓는 글. 그리하여 허물어진 틈새 너머에서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더듬는 글. 그 세계의 얼굴은 매번 다르겠으나, 아마도 연대,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을 공유할 것이다.

거창하게 이야기했으나 매번 대단한 글을 내놓기는 사실 어려울 것이다. 내 지반이 견고하지 못할 때, 내가 열려는 새로운 세계를 물들여야 할 노을빛은 한없이 미약해지고 말 테다.

그러므로 먼저, 내 지평을 단단하게 다질 것. 무감해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 사유하고 쓸 것. 초하라는 이름은, 그러한 선언의 초석으로 놓인다.

초하
choha@yonsei.ac.kr
나, 너, 그리고 세계

One thought on “경계의 틈새로, 새로운 세계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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